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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리와 초컬릿 공장] 오오, 나를 유혹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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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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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9


출처: finching.net

팀 버튼(Tim Burton) 감독과 조니 뎁(Johnny Depp)의 재회로, 또한 40여년간 지속적인 인기를 유지했던 웨일즈 태생의 노르웨이 이민 2세 작가 루얼 달(Roald Dahl - 흔히 로얼드, 혹은 로알드 달이라고 표기하던데, 찾아보니까 노르웨이식으로 'ROO-all'이라 읽는단다)의 [찰리와 초컬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 1964)의 두번째 영화 버전으로 화제가 되었던 [찰리와 초컬릿 공장](2005)을 보게 되었다.

사실 이 영화는 울집 소년조차 이제는 비웃을만한(?) 초딩용 영화다. 특활 시간에 이 영화를 단체 관람했던 울집 소년은 "아주~ 좋은 영화죠?"라고 감동적인 어조로 말하던 담임 선생님을 뒤에서 친구들과 비웃으며 "우찌 우리더러 저런 초딩 영화를 보란 말이냐"고 툴툴댄 바 있다. 초딩때는 루얼 달의 동화책을 무지막지 재미있다며 읽었던 주제에. 올챙잇적 생각을 좀 해라, 인석아.

그래도 팀 버튼인데...? 원작의 재미나면서도 기이한 분위기를 한층 더 자기 스타일로 요상하게 재현해놓지 않았을까?

물론 영화는 그러한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주었다. 거대한 초컬릿의 폭포수, 나올 때마다 각종 영화며 대중 문화를 다양하게도 패러디하는 움파룸파의 공연(!), 원작의 캐릭터에 기괴하게 비틀린 엉뚱함과 상처입은 가족사의 배경을 슬쩍 깔아놓은 윌리 웡카의 캐릭터, 호두를 까는 다람쥐들, 막판에 나를 웃겨준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의 패러디, 탐욕스러운 아이들의 막판 껄쩍지근한 결말...재미난 건 요기까지.

영화의 줄거리는 다 알려져 있다시피 매우 간단한 권선징악의 구도로 되어있으며, 여기에다가 원작에는 없던 웡카와 아버지의 화해 장면까지 덧붙여지면서 신파적인 느낌까지 준다. 찰리를 제외한 네 아이들은 너무나 어이없을 정도로 탐욕스럽고 경쟁적이고 안하무인이어서, 그들이 거의 '아동학대'의 수준으로 '벌'을 받는 장면에서도 별다른 심리적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찰리처럼 가족을 사랑하며 착하게 살자는 것이 이 영화의 교훈인가? 뭐, 일단은 그렇다. 그렇지만 또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이야기들도 있다.

가령, 찰리는 시종일관 초컬릿 공장의 장관에 감탄하고 진지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웡카의 '특별상'을 받게 되지만, 사실 웡카의 특별상을 받게 되는 과정의 경쟁률은 실로 장난이 아니다. 예컨대 꼭 황금 티켓을 가지고야 말겠다는 버루카의 욕심 때문에 버루카의 아버지는 자기 공장의 생산을 중단하고 수만개의 웡카 초컬릿 포장을 뜯는 황당한 일을 벌일 정도다. (원작에는 영화에 잠깐 나오는 위조 티켓 얘기가 한참 나오는 것으로 기억된다.)

그 와중에 찰리가 황금 티켓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정말 그럴리 없는 우연과 행운 덕분이며, 그것은 찰리의 황금 티켓이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준 초컬릿에서도, 할아버지가 몰래 감춰둔 소중한 동전으로 사온 초컬릿에서도 나오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터벌터벌 걸어가다 눈 속에서 주운 지폐로 산 초컬릿에서 나온다는 설정으로 드러난다.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아서 상을 받을 확률? 거의 없다. 매우 드물게, 기가 막힌 우연에 우연이 겹겹으로 겹치지 않는 한. 그러나 경쟁 막판의 다섯명 안에 들어가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상을 줄 사람은 누가 그 상을 받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인가를 면밀하게 따져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상이 자신의 초컬릿 공장을 물려주는 일임에랴.

찰리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이 경쟁에서 탈락한 이유는, 싸가지없고 탐욕스럽거나 교만해서이기도 하지만, 찰리만큼 초컬릿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 1등을 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해서, 게임하는 동안은 뭐든 상관없기 때문에 초컬릿을 먹는다. 양배추 스프만 일년 내내 먹으며 겨우 생일이 되어야 초컬릿을 딱 한 개(엄밀히 말하면 한 개도 아니다, 온 식구들이 나눠 먹으니까...) 맛볼 수 있는 찰리만이, 초컬릿의 그 매력적인 달콤쌉싸름한 맛을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근데 왜 하필 초컬릿이냐고? 초컬릿의 맛은 악마의 유혹이니까. 초컬릿은 달콤하고 쌉쌀하게 입안을 감돌면서 이를 썩게 만들고, 별 영양소도 없이 칼로리만 채워주며, 심지어는 음탕한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고 알려져 왔다. (과학적으로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초컬릿은 한때 최음제라 여겨졌고, 아마도 애인에게 초컬릿을 주는 풍습은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웡카와 찰리의, 그리고 이 영화를 즐겨 본 관객들의 공통점은? 초컬릿을 좋아한다! 어른들은 그거 뭐하러 먹냐고 핀잔이나 주며 눈을 흘기는, 그 환상적인 맛의 초컬릿 말이다.

웡카의 아버지는 새하얗고 가지런한 치아가 인생의 목적이라 여기는 치과의사고, 찰리의 아버지는 공교롭게도(!) 치약 공장에서 일했더랬다. 치과+치약 vs. 초컬릿, 아버지 vs. 아들, 제도 vs. 일탈, 법칙 vs. 상상력... 웡카와 찰리의 다른 점은, 웡카는 아버지의 거센 압력에 못이겨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었고, 그로 인해 '부모'라는 단어를 발음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던 반면, 찰리의 아버지는 초컬릿에 대한 찰리의 욕망을 굳이 죄악시하지 않았고 (죄악시하나마나 사줄 형편이 안 되니까), 찰리 역시 4명의 조부모와 자신의 부모와 함께 단 하나밖에 없는 초컬릿을 나눠먹을 정도의 의리를 지켰다는 점이다.

어른들과의 적절한 타협, 그게 애들에게 권하는 이 영화의 메시지인 셈이고, "착하게 살자"의 실제 내용이다. 아버지에게 짓눌린 윌리 웡카를 그냥 재미난 괴짜 정도가 아니라, 상처입은 영혼으로 설정해놓은 탓에, 영화는 순진하고 해맑은 얼굴의 찰리(Freddie Highmore 분)의 미래를 하얀 틀니를 쓰고 마치 마이클 잭슨같은 희뿌옇고 기괴한 얼굴로, 70년대 글램록 풍의 의상을 입은 윌리 웡카로 설정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신파조의 '가족 화해'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상 이러한 타협과 화해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윌리 웡카의(혹은 나중엔 찰리 버킷의) 초컬릿 공장은 더이상 그렇게 기괴하고 재미나고 편집광적인 느낌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찰리에 의한 웡카의 포섭. 이것이 웡카의 이상한 초컬릿 공장(단 거 많이 먹지 마라, 이 닦고 자라는 어른의 목소리에 저항하는!)이 영원히 계속될 것같은 느낌을 주는 원작 동화와 팀 버튼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보인다. 일찌기 아버지를 잃고, 영국 학교의 엄격한 제도적 폭력에 신물이 나도록 질렸다며 과거와의 화해를 거부한 루얼 달과, 최근작 [빅 피쉬]에서도 역시 아버지와의 화해라는 주제를 다룬 팀 버튼과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또 한가지는, 움파룸파와 관련된 인종주의의 혐의다. 원작에서 움파룸파는 아프리카에 사는 피그미족같은 키작은 종족이다. 웡카는 코코어 빈에 환장한 이 종족들에게 나를 따라가면 코코어 빈으로 만드는 초컬릿을 실컷 먹여주겠다고 꼬여서, 화물 상자에 넣어 짐짝처럼 이들을 밀반입(!)한다. 밀반입 과정은 영화에서는 생략되었고, 또한 책에선 조금 키 작은 종족이던 움파룸파의 사이즈도 이들이 인간인지 아니면 다른 종족의 생명체인지 알쏭달쏭할 정도로 아주 조그맣게 줄어들었다. 원작의 인종주의적 혐의를 다소나마 털어버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영어를 잘 알아들으면서도 공장 밖으론 절대로 나갈 수 없고, 신제품의 실험 대상까지 되는 이 움파룸파들에 관해서는 그냥 웃기고 재미나다고 말하기엔 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케냐의 태생의 인도 계통 배우인 딥 로이(Deep Roy)가 1인 165역을 했대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그의 엄숙한 표정이 쭉 늘어서서 '볼리우드' 풍의 춤을 추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초컬릿이라는 물건 자체가 아주 싼 노동력을 지닌 제3세계의 원료를 들여와 각종 방식으로 가공하여 은박 금박으로 근사하게 포장하여 다시 제3세계에 (가령 한국 전쟁 당시의 한국같은...) 뿌려대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긴, 나는 초컬릿을 달라고 맨발로 미군 지프 뒤를 따라다녀 본 적도 없거니와, 지금은 내 맘대로 먹고 싶은 초컬릿을 사먹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었으니, 이렇게 투덜대는 것이 좀 우습지만.

뜽금없이 초컬릿은 과연 나한테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보고 싶거나, 무작정 초컬릿이 당기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해드린다. 동화책을 머리 속에 꿰고 있다면, 그리고 아주 재미나게 책을 읽은 기억을 생생하게 가지고 계시다면, 아마 동화 속의 신기한 초컬릿 공장이 화면에 재현되는 재미 정도에 그치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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