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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아름다운 그림일 뿐인가?: <형사>를 보고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5-09-11

이메일

bloom.pe.kr

조회

3453


단순화해서 말하면, 영화를 보는 데는 두 가지 대비되는 취향이 있다. 하나는 다른 것보다 어쨌든 영화의 이야기, 서사를 중시하는 태도. 다른 하나는 영화의 '영상미'를 강조하며 이야기는 지엽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 어느 쪽이 타당한지는 판단하기 힘들겠다. 그저 자기 취향대로 보는 것이니까. 내 경우는 전자에 가깝다. 아무리 화면이 멋있어도 이야기가 엉망이면 그 영화가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좋은 그림이 주는 미적 감흥도 물론 있지만 영화는 단지 좋은 그림이 아니며, 좋은 그림들을 엮는 것 자체가 이미 의식했든 아니든, 그리고 그게 유기적인 틀이든 아니든 나름의 이야기 틀을 전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전혀 배제한 영화가 가능한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림을 짜는 틀이 이미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에 대해 자의식을 가질 필요는 있지 않을까. 좋은 영화를 판단하는 나 나름의 기준에는 이런 자의식의 유무도 있다. 얼마전 본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도 적어도 내게는 그리 좋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런 자의식의 미흡함 때문이었다.

몸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무협영화의 경우는 더욱 이야기와 영사미 사이의 입장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어차피 무협이라는 것이 무슨 이야기의 사실성을 따지는 장르가 아닌 데다가 몸과 칼의 움직임이 주는 아름다움은 이야기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음미할 가치 있기 때문이다. 아래 짧게 쓴 <옹박2>도 그런 예의 하나이겠다. 그런 점에서 감독이 '스타일리스트'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칭찬이기도 하지만 욕이 될 수도 있다. 그저 아름다운 그림을 찍는 그림쟁이라는 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영화는 미술에 가깝기는 하지만 미술이 아니다. 그리고 그림을 아름답게만 그린다고 미술의 거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종합예술이라는 영화의 경우에야 더욱 그렇다.

한참 전에 인상깊게 보았던 장예모 감독의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화려한 색감의 미학이 주목받았던 이유나 그가 나름의 영화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가 화려하게 선보인 색감의 미학을 지탱하는 이야기 틀과 거기 스며든 사유의 깊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게 서로 어긋나기 시작할 때 그가 최근 만든 무협영화들인 <영웅>이나 <연인>같은 태작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하나하나의 장면은 그림처럼 아름다우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 영화의 감흥은 거의 남지 않고 화려한 색깔들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걸 허망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스타일의 승리라고 불러야 할까. 역시 영화 보는 취향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는 허망하다고 느끼는 쪽에 가깝다.

한국영화의 주목받는 스타일리스트로 평가받는다는 이명세 감독의 <형사>를 본 느낌도 그랬다. 한국영화에서도 이 정도의 색감과 장면만들기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이 있구나 하는 감탄이 물론 나온다. 특히 어둠과 밝음의 대비 속에서, 어둠으로 끌려들어 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들,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칼싸움인지 사랑의 애무인지가 헷갈리게 표현되는 몸과 칼의 움직임 등은, 두 주인공이 무협전문배우가 아니기에 느껴지는 어색함을 잊게 만들 정도로 멋지다. 장면 하나하나가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그건 웬만한 장인정신이 없으면 하기 힘들 작업이겠다. 또한 무공이 대결이 초점이 아니라 칼의 부딪침을 통해 남녀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도 장예모의 <연인>이 보여주는 과장성에 비해 낫다.

그러나 그 뿐이다. 스타일에 너무 얽매이다 보니 남순(하지원)과 슬픈눈(강동원)의 사랑이야기는 깊이가 없다. 물론 감독의 의도가 애초부터 이야기에 있는 게 아니라 장면만들기에 있었다고 변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작품이든 영화든 작품의 의미는 작가/감독의 의도에 있지 않다. 의미는 작품과 독자/관객이 부딪쳐 생성되는 순간에 사후적으로 만들어질 뿐이다. 그러니 감독의 의도를 운운하는 것은 이 영화의 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이 못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이제는 홍콩 무협영화의 고전이 된 <동방불패> 1편이 생각났다. (이 영화의 2, 3편은 볼게 못된다. 전작에 훨씬 못 미치는 속편(spin-off)을 만드는 것은 어느 나라 영화나 비슷하지만 홍콩영화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동방불패>의 매력은 유려한 몸놀림에서 드러나는 무공의 세계를 잘 표현한 데도 있지만, 무협의 형식을 통해 결국은 사람의 관계를 다룬 데 있다. 적이면서 동시에 연정을 느끼는, 동방불패(임청하분)와 임호충(이연걸분)의 독특한 관계가 이 영화를 무협의 걸작으로 만든 요소라는 걸 부인할 수 있을까. 화려한 무공과 색감의 미학 또한 중요하지만 말이다.

<형사>를 보고 뛰어난 스타일리스트를 새삼 한 명 발견한 일은 기쁜 일이지만, 뭔가 아쉽다. 박찬욱이나 이명세나 앞으로 펼쳐나갈 자신들의 영화세계를 좀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만큼 기대가 큰 관객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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