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세미나들

 *영미연 안팎 소식

 *이달의 학술행사

 *문화 리뷰

 *다른 집 가기

 *책읽기,세상읽기

연구회소개 / 회원가입 / 분과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제   목

 남자와 여자의 거리: <연애의 목적>을 보고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5-09-01

이메일

bloom.pe.kr

조회

4781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는 영화 <연애의 목적>을 뒤늦게 비디오로 보았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고,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특히 나같은 (생물학적) 남성은 더 말하기가 여러가지로 조심스럽게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 대해 여성관객들이나 비평가들이 격렬한 비판을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비판들의 원칙적 온당함은 인정하더라도 그게 다는 아니라는 생각 또한 든다. 그런 원론적 비판은 이 영화의 재미와 힘을 어떤 점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손쉽게 반여성주의, 마초주의 영화라고 딱지 붙이기 어려운 미묘한 부분들에서 이 영화의 재미와 힘이 나온다는 생각이다. 몇가지 단상들.

> 남자, 이유림

26세, 직업은 교사, 6년인가 7년인가 사귀어서 이제는 거의 '가족'같은 느낌이 드는 애인이 있는 남자. '연애의 목적'은 별거 아니고 마음이 서로 '통'하고 몸이 땡기면 그냥 같이 자면 되는 거 아니냐고 믿는 단순한 남자. 지가 좋아하는 여자면 집에까지 찾아가 허락도 없이 유리창을 열고 들여다보고 집안으로 허락도 없이 쳐들어가는 걸, 그런 스토커적 행동을 사랑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남자. 외동아들인지라 철딱서니가 없고 하는 짓은 어찌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마초인 남자. 하지만 달리 보면 꽤 순진한 구석도 있고 세상물정 모르는만큼 자기 감정과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정직해 보이는 남자.

이 정도로만 이 인물의 캐릭터를 짚어봐도 어디서 많이 본 인물이라는 느낌이고 박해일에 게 딱 어울리는 역이라는 생각도 든다. 적지 않은 여성관객이나 페미니스트들이 유림이라는 인물에 열 받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아니 어쩌면 이 인물에 열받았다기보다는 이런 '마초적' 이고 철딱서니없는 '넘'을 때로는 귀엽게, 혹은 동정이 가게끔 그린 감독의 태도에 열받았을 게다. 더욱이 이제 31살이라는 젊은 남성감독이 이런 마초적(?) 시선을 보이고 있으니 더 열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박해일이라는 매력적인, 그리고 재능있는 젊은 남자배우가 연기했기에 더 미워해야 할지 귀엽다고 해야 할지 종잡기 어려운 유림이라는 인물은 이중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마초주의나 스토커적 행위, 혹은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여자 없다는 전래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경구를 사랑이라고 자기 혼자 믿고 밀어붙이는 걸로 보이는, 그의 나이브한 의식수준이 물론 어이없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게 다는 아니다. 그는 나름의 '미덕'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미덕이 그의 문제점, 그의 철딱서니없음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는 것이 더 이 인물을 단순하게 보기 힘들게 만든다.

유림은 철딱서니가 없고 남의 감정을 배려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 수준과는 별개로 그는 자기 감정에 충실하다. 이기적일 정도로. 아니 자기 감정을 머리로 안다기보다는몸으로 느낀다. 그가 최홍(강혜정분)을 스토커로 낙인찍게 만들었던 학교 조교가 누군인지 알아보라고 하면서 그 얼굴짝을 보고 싶다고 자기 애인에게 말할 때 그의 표정과 태도가 한 예이다. 유림은 홍과의 관계를 교육당국에게 추궁당하게 되자 결국은 자기 자신의 행위를 옹호하면서 홍과의 관계를 얼버무리기에 홍에게 회심의 일격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 장면 전에 유림이 홍을 옹호하며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그 어설픈 '도덕주의자' 국어선생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장면은 어떤가.

이런 장면들은 어쩌면 철딱서니 없고 유치하기 때문에 그만큼 솔직할 수도 있는 유림의 이중적 면모, 그래서 결국 홍이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그만의 미덕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싶다.

언뜻 보면 유림 같은 남성들은 많다. 그렇게 철딱서니없고 마초적이고 세상물정 모르는 유치한 마초들, 자기가 마초인줄도 모르는 남성들 말이다. (이렇게 적고 있자니 스스로 얼굴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또한 유림처럼 바로 그 찌진함과 유치함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자기가 좋아한다고 느끼는 여자에게 솔직할 수 있는 남성도 드물지 않을까. 그게 때로는 마초적으로 비칠지라도 말이다. 감정의 정직함과 마초주의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그게 이 영화의 힘이고 달리 보면 문제점일 텐데, 나는 앞쪽에 한표를 던진다.

어쨌든 그는 홍에게 베팅을 했다. 그래서 6년을 사귄 애인과 갈라서고 학교에서도 홍때문에 쫒겨난다. 그런 베팅을 할 수 있는 남자가 얼마나 될까. 대개의 남성들은 홍의 애인인 잘 나가는 점잖은 의사처럼 그저 대충 상황을 점잖게 수습이나 하려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라 나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다. 유림은 나같이 정직하지 않은 남성들과는 조금 다른 남자이다. 내가 유림을 너무 좋게 봐주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감정의 정직함과 그 감정에 머뭇거리지 않고 베팅하는 능력은 유림의 남다른 미덕이 아닐까.

이런 얘기도 남성주의처럼 들리지 모르지만, 이 정도의 베팅이나마 할 줄 아는 남성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감독은 유림을 통해 마초주의와 자기 감정에 충실함 사이의 어려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인물, 더욱이 자신이 그런 줄타기를 하고 있는줄조차 잘 모르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낸 걸로 보인다. 유림같은 인물이 '여성관객'들에게 불만스럽게 보이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리얼리즘이 주어진 현실 밖에서 어떤 멋진 대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무리 한심해보이고 추해보일지라도 주어진 현실 안에서 그 현실을 넘어설, 최소한 그 현실에 균열을 내는 어떤 지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유림이라는 인물은 그런 균열의 한 표현은 아닐까.

> 여자, 최홍

27세의 늦깎이 교생. 좋아했던 남자가 유부남이었고 그에게 매달리다가 스토커로 몰려 학교에서 쫒겨났던 여자. 남성인 나로서는 그 감정의 움직임이 이해하기 힘든 여자. 하지만 그가 왜 유림같은 남자를 받아들이고 그에게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가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여자.

나는 배우 강혜정이 좋은 배우, 매력적인 배우라는 생각을 해왔지만 이 영화를 보고 우리 영화계에 오랜만에 참 좋은 여자배우가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녀는 매력적이고 그 매력은 최홍이라는 종잡기 어려운, 그러나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에 잘 맞는다.

많은 여성관객들이 왜 최홍같은 여자가 이유림같은 마초를 단번에 내치지 못하고 마음과 몸을 열어주는지, 더욱이 영화의 끝에서 남성들의 대표자격(?)인 유림에게, 그녀가 당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복수'를 했으면 되었지 왜 유림에게 다시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남성이라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홍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위에 적었지만 유림은, 겉으로 드러나는 여러 가지 한심한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녀에게 아마도 처음으로 정직하게 다가왔던 남자이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말이다. 잔머리 굴리지 않는 것이 드러나는 방식이 유치한 마초주의인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하지만 되풀이 말하건대 마초주의적이지 않으면서 또한 잔머리굴리지 않고 자기자신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정직할 수 있는 남성 혹은 여성의 모습은 아직 현실에서는 그리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렇다면 그런 이상적인 남성 혹은 여성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맺는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기 지금은 어렵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리얼리티'를 이 영화는 획득한 것이 아닐까.

나는 그래서 유림에게 결국 돌아온 최홍의 결정을 이해하다. 그리고 그 장면, 잔뜩 술에 취해 꼬장 부리는 유림에게 기대어 '자러 가자'고 말하는 홍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런 장면은 강혜정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것도 남성적 시선의 가부장적 투사인가. 이런 반응 또한 남성주의적이라고 뭐라 한다면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다만 한가지. 여성주의, 여성해방론이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되는 것처럼 남성(중심)주의라는 말도 그렇게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는 것은 말하고 싶다.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기 힘든 것처럼 여성이 남성을 이해하는 것도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 연애의 목적?

연애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더욱이 나처럼 개별 존재가 다른 존재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가능성을 별로 믿지 않는 사람, 그리고 특히 남성과 여성은 매우 다른 존재이고 그 다른 존재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건 사실 '환상'이라고 믿는 사람은 더 '연애의 목적'을 뭐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유림에게 연애의 목적이 그냥 땡기면 자는 것이라면 홍에게 연애의 목적은 자신을 재워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얘기하면, 그게 연애의 목적은 사랑이요 결혼이라고 얘기하는 케케묵은 주장보다는 좀 쿨하지 않을까.

나는 이 영화를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인 남성과 여성이 그 이해할 수 없음이라는 벽을 넘어, 아니 최소한 그 벽에 자그마한 균열을 내는 모습을 그린 영화로 읽었다. 남녀가 착잡하게 전달할 수밖에 없는 감정의 미묘한 모습들, 그게 설사 이기적인 욕망일지라도 자기가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싶은 남성과 여성의 욕망이 드러나고 부딪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로 읽었다.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 어쩌고 하는 근대적인 사랑 개념의 상투성은 나도 마땅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욕망의 존재자체를 손쉽게 내치는 것 또한 관념적이라고 나는 믿는다. 연애와 사랑을 정의하기가 힘든 것도 아마 이 복잡다단한 연애의 목적과 과정 때문이 아닐까. 이 영화의 힘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다는 데에서 나온다.

> 학교, 여교사

영화의 배경이 학교인 것이 재미있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선생들의 보여주는 그 몰상식함과 편협함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특히 점잔빼면서 유림에게 훈계하지만, 홍의 말 한마디에 태도를 돌변해 홍의 '페미니스트' 동지가 된 척 하는 여자 국어선생 캐릭터는 재미있다. 더 비열한 인간은 유림이 아니라 그런 국어선생이다.

모든 이론이 그렇지만 특히 이론이 아니라 이론을 넘어 감성과 몸으로 체화되는 이론이어야 하는 페미니즘에서, 머리가 아니라 감성으로, 몸으로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쉽지 않다. 그게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같이 보고 논의해보고 싶은 영화이다. 논란거리가 많다고 꼭 좋은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들, 특히 남녀관계같이 미묘한 문제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를 오랜만에 본 건 기쁜 일이다. 한국영화, 연애영화에서도 여기까지 왔다는 게 대견해 보인다. 아직까지 보지 못한 분들, 챙겨보실 만한 영화다. 보고나서 영화를 좋아하게 될지 어떨지는 각자의 취향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관련글 제목

작성자

작성일자

조회

남자와 여자의 거리: <연애의 목적>을 보고 <- 현재글

Bloom
2005-09-01
4781

 

 

 

연구회소개 | 회원 가입  |  분과 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운영위  |  안과밖편집위  |  자료실편집위 |  영미문학연구 편집위 |  출판기획위번역평가위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SES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