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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 디스 월드]: 어둠에서 어둠으로

작성자

강우성[펌]

작성일자

2005-07-27

이메일

조회

3413


강우성선생님의 영화평을 퍼옵니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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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로드무비'라는 광고문구는 틀려도 한참 틀렸다. 이걸 '로드무비'에 넣을 수 있을 지도 잘 모르겠고, '가장 슬픈' 이라는 형용사도 아프간 난민 젊은이들인 자말과 에나야트가 겪는 여정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감상적이다. 차라리 한편의 다큐멘타리를 닮은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을 건조하면서도 또박또박 설명하는 내레이션이나, 자신들이 내딛은 이 엄청난 여행이 주는 공포와 중압을 에누리없이 견디는 이들의 단단한 침묵, 브로커들의 닳고닳은 사기행태에 지치고 치이며 짐짝 취급을 받으면서도 몸 어느 구석에 꺽이지 않는 꼿꼿함을 간직한 에나야트의 매서운 눈초리, 그리고 런던의 레스토랑 구석에서 에나야트의 죽음을 알리는 자말의 무덤덤함이, 종착지만 있고 방향은 상실한 기나긴 여정의 실상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해준다.

사실 이들의 여행을 숨죽여 따라나선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미 이들의 여정이 무모하다거나 대책없는 일이라는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은 애초에 버리게 된다. 이들을 따라다니며 내가 조바심을 쳤던 것은 과연 그들이 무사히 런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염려가 아니라, 나라면 저런 길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심리 때문이었다. 뉴욕도 아니고, 런던이 도대체 뭐간디... 그런데 자말과 에나야트에게서는 여행내내 이런 질문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히드로 공항의 입국심사원도 대영제국의 이민국 직원도 아니지만, 도대체 니들이 런던에 가려는 이유가 뭐냔 말이다, 라고 묻고 싶어졌던 터였다.

이들의 침묵으로 판단하건대, 그리고 그 침묵 뒤에 도사린 저 깊은 영혼 속의 숨죽인 공포로 보건대 이들을 떠나가게 만든 것은, '좀더 나은 미래'라는 꿈보다도 난민으로 살아야하는 자신들의 뿌리뽑힌 삶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따라서 런던으로의 여행은 처음부터 종착지에서 그 어떤 확실한 무엇을 찾기위한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운명의 수레바퀴에 몸을 던지는, 어쩌면 예정된 실패에 우연으로 맞서는 무모한 도전이고 모험인 셈이다.

그들을 인도하는 것은 오로지 알라신. 그들은 던져진 주사위일 뿐이고, 어떤 수가 나오더라도 필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 모래폭풍이 부는 황량한 사막에서도, 한마리 눈멀고 쫓기는 짐승처럼 사선을 넘던 터기국경에서의 그 눈보라 속에서도 그들은 이슬람교도로서의 자신들의 운명은 애초부터 자신들에게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묵묵히 확증하고 있을 뿐이다.

두 차례에 걸친 런던테러를 두고, "이건 문명의 충돌이 아니"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바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논리에 투항하는 것"이라는 블레어 총리의 궤변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정말로 '문명의 충돌'이라는 해묵은 오리엔탈리즘의 논리로 설명될 성질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어디에서도 '난민'(refugee)의 신세를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며, 어떤 면에서는 돈을 치르고 갑싼 노동력으로 팔려가려는 지극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행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들에게 '노마드'라는 용어를 들이대는 것 또한 화려한 미사여구일 뿐이다.

에나야트는 죽음의 순간에야 비로소 이 지긋지긋한 여행을, 자신들이 움직여 가는 것이 아니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전달되는 이 어처구니 없는 여행을 멈추라고 울부짖는다. 그들에겐 정말 전혀 다른 선택이, 전혀 다른 세계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런 질문은, 수십년전에 그런 생지옥 같은 난민시절을 지나 이제는 편안하고 시원한 극장 안에서 그들의 고통스런 여정을 화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사람에게나 떠오를 사치스런 물음일지도 모르겠다.

이슬람은 그들에게 주말에야 생각나는 '종교'가 아니고, 허름한 흙벽들이 사람보다 더 높이 솟은 난민촌은 노마드적 삶의 터전이 결코 아니며, 런던은... 달콤하면서도 쓰라린 '아메리카의 꿈' 같은 성공의 보증수표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들을 런던으로 끌어 당겼던 것은 런던만이 가진 그 무엇이라기보다 그들의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 그리고 그들이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어떤 불확실한 미래, 흔들리는 카메라만큼이나 불명확한 우연의 부름이었을지 모른다.

저들의 눈을 보라. 저들의 매서운 응시를 보라. 이슬람교는, 그리고 유대-기독교 서구 자본주의 문명은, 무수한 자말들과 에나야트들의 이 불확실한 미래에 무한한 책임이 있다. 에나야트의 죽음에서, 100여년 전 콩고에서의 커츠(Kurtz)의 죽음보다 더 어두운 어둠의 핵심이 여전히 도버해협을, 그 터널밑을 흐르고 있음을, 윈터바텀의 이 건조한 영화는 무겁게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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