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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달불가능점'이 뜻하는 것?: <남극일기>를 보고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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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pe.kr

조회

3613


한참 전에 본 영화의 기억. 브랫 핏이 주연한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뛰어난 등반가이자 나찌 대원이었던 하인리히 머시기라는 한 독일인이 영국군의 체포를 피해 티벳에 들어가 어린 달라이 라마와 보낸 7년 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이 영화에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지만 그중 인상적인 것 하나.

티벳 여성이 뛰어난 산악인임을 자부하면서 높은 산을 다 올라봤다고 거들먹거리는 하인리히를 비롯한 독일인들에게 던지는 질문. 그런데 그렇게 높은 산을 올라서 무엇을 얻나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영화에서 독일인들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며 황당해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들은 아마도 왜 이 티벳 여성이 그런 질문을 던지는지조차 이해 못했을 것이다. 아니, 높은 산을 오르는 남성들의 '정복욕'을 어찌 여성이 이해하랴 그런 마음이었겠지. 그것도 아니면 조금 더 고상한 답변. 저기 산이 있으니까 오를 뿐이다라는 답변 정도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경우에도 역시 질문은 남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목숨을 던지고서라도 그렇게 산에 오르려고 하나요? 무엇을 위해?

내가 영화 <남극일기>를 보면 던진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이 영화는 언뜻 보면 기존에 많이 봐온 '극한적 상황'에 맞서는 '영웅적' 사람들의 이야기 틀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인간승리'의 상투적인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영화의 광고문구가 보여주듯이 하얀 얼음이 지배하는 남극벌판에서 미치고 죽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또한 새롭지 않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이라는 대상은 인간에게 숭고함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것이 숭고한 대상이기에 인간을 광기로 몰고 가기도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남극대륙을 뒤덮은 하얀 얼음과 닮은 '하얀' 고래를 찾아 자기를 파멸로 몰고 가는 멜빌의 <모비딕>을 떠올리게 되는 건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지만 그런 광기의 이야기인 점도 분명 있다.

그러나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탐험대장 최도형(송강호)을 비롯한 6명의 탐험대원이 가려는 남극의 '도달불능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 질문이다. 더욱이 그들은 시간에 쫓긴다. 6개월 동안 계속 될 밤의 시간이 오기 전에 목표점에 도착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60일의 시한을 지키지 못할 때 그들은 살아남기 힘들다. 그리고 탐험도중에 이들은 그들의 앞으로의 운명을 예감케 해주는, 80년 전에 바로 그들이 갔던 길에서 아마도 같은 모습으로 죽어갔을 영국탐험대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니 최도형은 끝까지 자신을 밀어붙인다. 그는 자기 곁에 있어달라는 어린 아이들의 바람을 뿌리쳤고, 그래서 아이가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고, 아내는 떠나버린 고통스런 과거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죽은 아이의 유령은 악마의 상징처럼 보이는 하얀 남극벌판에서 수시로 출몰한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아이의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가려고 했던 탐험의 여러 목표들, '도달불가능점'에 닿은 그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탐험대의 막내인 민재(유지태)는 그 도달불능점이 사실은 없으며 거기에 간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도형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들은 싸운다. 어쨌든 그 둘은 밤과 낮이 바뀌는 날 그 도달불능점으로 믿어지는 곳에 다다른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민재의 말처럼 그곳은 지도에 찍힌 하나의 '점'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도형은 다시 새로운 '점'을 찾아 눈보라 속으로 떠나간다.

이것도 직업병이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라캉 생각이 자꾸 났다. 도형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 도형은 가족까지 희생하면서 뭔가를 얻으려고, 어떤 '도달불가능점'에 닿으려고 한다. 거기 가면 편안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하면 안주하지 못하고 다시 새로운 '점'을 찾아 움직인다. 그에게 마지막 도착점은 없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게 삶의 모습이 아닐까. 그것이 탐험의 대상이든, 돈과 명예, 권력이든 마찬가지이다. 추구하는 그 무엇을 얻으면, 그 '도달불능점'에 도달하면 뭔가 내 삶이 충족될 것 같다는 욕망. 그러나 라캉이 통찰했듯이 그런 충족의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도형이 그랬듯이 또 다른 '점'을 찾아가야 한다. 설사 그 점에 간들 역시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말이다. 찾아간 점에는 사실 아무 것도 없다. 어디선가 라캉이 일갈했듯이 삶의 베일 뒤에는 해골바가지만이 있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은 사실 그 베일을 벗겨보면, 그 지도 위의 '점'에 도달하면, 아무 것도 없는 깜깜한 점일 뿐이다. 도달불가능점이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도달 불가능하다는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도달한 순간 거기에는 사실 아무 것도 없으며 그 이름의 매력은 사라진다. 그러면 다시 새로운 '도달불가능점'을 찾아 떠나야 한다.

인생이 슬픈 이유는 그 '점'에 간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을 때까지 새로운 '도달불능점'들을 설정하고 거기 가려고 애쓴다는, 아니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 길은 좁고 어려운 길이다. 송강호가 탁월하게 연기한 도형의 모습, 특히 도달불가능점에서 다시 눈보라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마지막 모습은 내게는 미친 사람의 광기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들 자신의 모습으로 읽힌다. 이 영화가 감독의 첫 연출작이라고 하는 데 좋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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