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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도, 일제 식민지 문제와 일본 탈근대 영화들

작성자

장시기

작성일자

2005-04-05

이메일

조회

3717


“독도문제”와 “일제 식민지 역사”를 바라보는 동아시아적 시각과 일본 근대 영화의 “풍자와 해학”, 일본 탈근대 영화의 “고백과 희망”


I. 독도문제와 일제 식민지 역사를 바라보는 동아시아적 시각

“독도문제”와 “일본 제국주의 36년 식민지의 역사”는 대한민국과 일본의 근대적 관계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일본의 집권 정권은 집권의 위기상황일 때마다 소위 “망언”이라고 일컬어지는 “독도의 일본 영유권”과 “일제 36년 지배”의 정당성을 제기한다. 이것은 마치 지난 박정희나 전두환 독재정권이 집권 정권의 위기상황일 때마다 “간첩단 사건”이나 “북한 정권의 포악성”을 제기하는 것과 같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정권의 입장에서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의 행동은 “망언”이나 “망동”이지만,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의 입장에서 “간첩단 사건”이나 “북한 정권의 포악성 문제”는 “충언”이거나 “구사일생의 충성스러운 사건”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해마다 반복되는 일본 관료의 “독도문제”와 “일제 36년의 정당성” 제기는 대한민국 근대 정권의 입장에서 “망언”이거나 “망동”이지만, 일본 제국주의 정권의 입장에서 그것은 일본 정권을 연장시키는 “충언”이거나 “구사일생의 충성스런 사건”이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관계를 남한과 북한의 대립이나 북조선과 남조선의 대립으로 보지 말고 한반도의 근대화 과정에서 살펴보아야 하듯이, 대한민국과 일본의 관계는 한민족과 일본민족의 대립과 갈등으로 보지 말고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에서 살펴보아야만 한다.

근대적 의미에서 일본의 근대 권력체계와 대한민국의 근대 권력체계는 항상 상부상조의 관계를 지닌다. 이러한 관계의 근원은 일본의 근대가 제국주의적 근대이고 대한민국의 근대가 식민주의적 근대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근대는 명치유신을 통한 제국주의 국가로 출발하였고, 대한민국의 근대는 일본을 비롯한 서구열강에 의한 굴욕적인 개항과 일제 식민지 국가로 출발하였다. 천황제를 토대로 한 일본 제국주의적 근대의 권력체계는 명치유신 이후로 근본적인 성격이 변하지 않고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조선의 국왕제를 폐지한 대한민국의 식민지적 근대의 권력체계는 일제 식민지 시대 이후로 친일의 근본적인 성격이 변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개의 권력체계가 일본 제국주의 국가의 태평양 전쟁 패망 이후로 본래의 제국주의적이거나 식민주의적 색깔을 숨긴 채로 자신들의 정권을 보장해주고 지원해주는 미국 지배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일본 의 근대 정권은 마치 제국주의적 성격을 포기한 것처럼 미국을 숭앙하는 자유주의 국가로 포장하고, 대한민국의 근대 정권은 마치 일제 식민주의적 권력의 성격에서 벗어난 자율적인 정권인 것처럼 미국을 숭앙하는 자유주의 국가로 포장하였다.

일본과 대한민국의 근대 정권은 국제적 관계에서 미국 지배 권력의 지시만 따르면 된다. 따라서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 하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적 근대 정권과 대한민국의 식민지적 근대 정권의 문제는 국제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지배 권력이 토대를 두고 있는 일본과 대한민국의 영토 내부에서 일어난다. 일본의 근대권력은 외부적으로 제국주의적 색깔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 내부적으로 제국주의적 일본제국의 향수와 부활을 꿈꾸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의 제국주의 집단들에 그들의 권력적 토대를 두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근대권력은 식민주의적 색깔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대한민국 내부적으로 일제 식민주의 시대의 향수와 부활을 꿈꾸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의 친일 집단들에 그들의 권력적 토대를 두고 있다. 따라서 매년 되풀이 되는 “독도문제”와 “일제 식민지 36년”에 대한 망언과 규탄은 항상 일본에서 일본 근대정권의 유지와 강화용으로 이용되었고,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근대정권의 유지와 강화용으로 이용되었다. 일본에서 “망언”을 하고 “망언”을 지지하는 집단은 천황제를 수단으로 획득한 자신들의 권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제국주의 집단들이고, 대한민국에서 “망언에 대한 규탄”을 하고 “망언에 대한 규탄”을 지지하는 집단은 친일을 수단으로 획득한 자신들의 권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식민주의 집단들이다.

지난 한 세기에 걸쳐서 유지되었던 일본과 대한민국의 근대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권력적 근친관계는 2005년 서서히 깨어지고 있다. 근대의 권력적 근친관계의 틈새는 일본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참여정부라고 일컫는 노무현 정권의 등장이 그것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식민지적 근대이면서 아류 제국주의의 흉내를 내는 식민지적 독재 권력에 신물이 난 대한민국의 민중과 외부적으로는 친미이면서 내부적으로는 친일의 대한민국 권력이 지닌 전혀 근대적이지도 못한 전근대적 특성 때문에 이미 탈근대적 지구촌 문화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이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였다는 것이다. 지난 50여년(혹은 근대화의 한 세기) 동안 유지되었던 대한민국의 근대 정권과는 달리 노무현 정권은 근대적 소수자들과 탈근대적 문화인들에 그들의 권력적 토대를 두고 있다. 노무현 정권을 유지하고 지속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그들의 권력적 토대를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혹은, 분명히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면 정말로 하루살이 권력의 하수인으로 끝날 것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은 정권의 차원에서 “독도문제”와 “일제 36년의 지배”에 대한 일본 권력집단의 망언과 망동을 책망해야만 하고, 심지어 일본 권력집단의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다면 외교관계의 단절까지 결행해야만 한다. 그것이 노무현 정권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비록 미국의 하수인으로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한 친미적인 노무현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일제 36년의 역사를 근대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굳건히 기억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노무현 정권은 최소한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식민지적이거나 굴욕적이지 않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정권임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일본과 대한민국에서 지난 한 세기 동안 반복된 지배와 저항, 그리고 망언과 규탄의 근대적 반복이 사라지고 마치 친구나 연인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정치와 경제를 포함한 삶 일반의 문화적 교류가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근대화 과정의 실상이 식민지적이거나 친일, 혹은 친미의 집단이 아니라 권력집단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이중 삼중의 억압과 굴욕을 견뎌내고 독자적인 개개인의 삶을 성취하고자 하였던 소수자들, 즉 노동자, 농민, 지식인, 여성 등등이었듯이 일본 근대화 과정의 실상 또한 제국주의적이거나 친미적인 집단이 아니라 일본의 근대 권력집단과 멀리 떨어져서 제국주의적 근대의 억압과 굴욕을 견뎌내고 자율적인 개개인의 삶을 성취하고자 했던 일본의 영토 내에 있었던 소수자들, 즉 일본의 노동자, 농민, 지식인, 여성 등등이라는 사실은 아주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가장 근대적인 영화들과 1950년대 이후의 탈근대적인 영화들이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II. 일본 근대 영화의 풍자와 해학

1897년부터 시작된 일본 영화의 역사는 일본 제국주의 국가의 권력체계처럼 결코 서구 추수적이거나 국가주의적이지 않았고, 영화 본래의 성격처럼 일본 본래의 전통적인 공연예술의 영향을 받은 대중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1910~1920년대의 일본 영화관들은 어느 정도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맞춰) 이미 계층화가 이루어진다. 즉, (제국주의적 근대화를 지향하는) 상류 계층이나 지식인 계층이 선호하는 서양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과 하층계급이 일반인들이 주로 보는 유치한 시대극들, 일본인들이 흔히 ‘찬바라 영화’라고 부른 것들을 상영하는 극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구분은 비록 근대의 영화일지언정 일본 영화는 결코 서구 추수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절정에 달했던 일본 근대영화는 서구적 근대의 장르영화와 흡사한 “시대극영화”라는 장르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의 가장 근대적인 “시대극 영화”를 만든 사람이 바로 태평양 전쟁의 전쟁터에서 죽은 야마나카 사다오(山中貞雄) 감독이었다.

“그가 전쟁터에서 죽은 것은 일본 영화계 최대의 손실”이라고 “오즈 야스지로”가 회한을 담아 술회한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은 “30편에 가까운 시대극영화를 만들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작품은 <백만량의 항아리>(1935)를 포함하여 단 3편뿐”이라고 한다. <백만량의 항아리>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30편 이상의 영화가 만들어진 유명한 <단게 사젠 이야기(丹下左膳余話)>를 코믹하게 그려낸 (일본 근대영화의 완성도가 아주 높은) 독특한 시대극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기존의 “단게 사젠” 영화처럼 비장한 이미지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장함과는 거리가 먼, 시시콜콜한 문제로 걱정을 하는 거의 동네 아저씨와 같은 인물로 등장한다. 이러한 일본의 근대적 서술구조의 지배를 받는 동시에 서구적 근대가 지니는 새로운 근대적 감성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은 일본의 근대적 대중 장르영화가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근대영화와 결합하여 독특한 일본 나름의 근대영화의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백만량의 항아리>에 등장하는 “단게 사젠”은 한 눈과 한 팔을 잃고 아내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소일하는 떠돌이 사무라이이다. “단게 사젠”은 “아규 가문의 영주가 선대 가문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백만냥의 가치가 있는 항아리를 둘러싼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서구의 근대적 주류가 산업화와 더불어 등장한 상업 부르주아와 중세 귀족계급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듯이 일본의 제국주의적 근대의 주류 또한 서구화와 더불어 등장한 상업 부르주아와 근대 이전의 귀족 가문 영주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졌다. 따라서 일본 근대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받치는 토대는 전근대적 천황제와 결합한 사무라이 정신이다. <백만량의 항아리>는 천황제의 토대가 되는 사무라이 영주 “아규 가문”의 두 형제가 전혀 귀족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무능력한 바보인 동시에 “백만냥의 가치”가 있는 항아리조차 식별할 줄 모르는 문화적 측면의 천치임을 희화화하여 보여준다. 사무라이(칼싸움)의 전근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은 조금은 멍청하고 약간 바보스러운 애꾸눈의 외팔이 “단게 사젠”이다. 그리고 백만냥의 가치가 있는 항아리를 식별할 줄 아는 사람은 어린 넝마주이의 딸과 여성적 정감을 지닌 “단게 사젠”과 이러쿵 저러쿵 부부싸움을 하는 조그마한 주막을 운영하는 그의 부인이다. 이러한 <백만량의 항아리>가 보여주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근대의 주류 계급에 대한 풍자와 전근대적 가치에 대한 해학은 일본적 근대를 달성한 실상이 바로 넝마주이들, 떠돌이 사무라이, 술집 여주인,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녀 등등의 근대적 주변인들이었음을 보여준다.

<백만량의 항아리>와 같은 일본 대중영화의 제국주의적 근대에 대한 풍자와 해학은 일본의 “누벨 바그”를 대표하는 스즈키 세이준(鈴木淸順) 감독의 <도쿄방랑자>(1966)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흔히 “갱스터, 누아르, 로드 무비, 뮤지컬, 멜로 드라마, 웨스턴, 슬랩스틱 코미디 등등의 장르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일본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고 평가되는 <도쿄방랑자>는 비록 표현의 형식은 근대에서 조금 벗어난 후기근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용의 형식은 여전히 근대성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스즈키 세이준 감독이 지니는 폭력과 코미디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그가 비록 다양한 근대적 영화장르를 넘나들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폭력과 코미디에 대한 대중적 상업성의 집착은 근본적으로 그의 영화들이 영화적 사건과 이미지들을 소홀히 하여 근대적 서술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미 영화의 초반부나 중반부에서 그 결말이 어떻게 끝날 지를 나름대로 추측할 수 있다. 총알이 빗발치는 야쿠자들의 사생결투에서 살아나는 주인공 테츠의 곡예는 마치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투에서 용감무쌍하게 살아남는 70년대의 우리 반공영화를 보는 듯하다.

<도쿄방랑자>에 등장하는 테츠는 의리가 있고 싸움의 능력이 뛰어난 거의 신화적인 존재의 깡패(야쿠자)이다. 정말로 웃기는 이야기. 의리가 있고 싸움의 능력이 뛰어나면 깡패가 신이 되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테츠는 깡패가 아닌 평범한 시민으로 살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깡패생활을 청산하고 평화롭고 안전하게 여생을 마치려고 하는 “구라타 파”의 두목 구라타의 오른 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아무런 관계의 변화 없이, 혹은 깡패생활로 축적한 재산을 비롯한 모든 권력의 포기 없이 어떻게 깡패가 깡패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영화에서 그것은 어느 정도 가능한 모티프를 갖는다. 그 모티프는 테츠가 구라타를 비롯한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방랑자(노마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테츠는 방랑자도 제대로 되지 못한다. 그는 도쿄가 아닌 지방의 “구라타 파들” 속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여전히 적대적인 “오츠카 파”와 대립하면서 이런 저런 깡패들의 싸움에 말려든다. 영화는 내내 나쁜 깡패와 좋은 깡패, 즉 선의 깡패와 악의 깡패로 이분된 두 개의 세계만이 있을 뿐이다. 미국의 부시가 선의 국가와 악의 국가를 이분하듯이 국가주의에 토대를 둔 근대는 항상 좋은 국가와 나쁜 국가, 좋은 남자와 나쁜 남자, 혹은 선의 인간과 악의 인간만이 있다. 이것이 소위 이데올로기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후기 근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제국주의 경제(혹은 자본)지상주의적 이데올로기이다.

이 세상은 결코 선/악의 이분법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선/악의 이분법은 근대의 폭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지배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테츠의 “의리가 있고 능력이 뛰어난 깡패”라는 신화가 인간의 내러티브가 만든 허상의 신화이듯이 “좋은 깡패와 나쁜 깡패”라는 계몽의 방식도 지배와 피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근대적 내러티브가 만든 허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깡패는 깡패일 뿐이다. 구라타와 오츠카는 마침내 자본을 통한 상호공존을 모색하고, 구라타는 오츠카의 청탁을 받아들여 테츠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좋은 깡패(혹은 좋은 아버지)라고 믿었던 구라타에게 배신을 당한 테츠는 도쿄로 돌아가 마침내 오츠카와 구라타를 함께 처치한다. 유치하고 이미 식상할대로 식상해버린 근대적 영화서술의 대단원! “도쿄방랑자”라는 가요는 주인공 테츠를 영웅의 신화로 끊임없이 신비화시키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 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코미디를 보는 희희낙락하는 웃음뿐이다. 웃음의 절정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테츠가 오츠카 일당과 구라타를 처치한 이후에 사랑하는 여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혼자 떠나는 장면이다. 인위적인 내러티브의 절정!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면서 관계에 따라서 선도 될 수 있고 악도 될 수 있는 근대적 소수자를 대표하는 여성과의 관계가 없이 어떻게 근대적 깡패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III. 일본 탈근대 영화의 고백과 희망

일본 영화의 탈근대적 근대의 고백과 희망은 1960년대 이후에 지속적으로 근대적 내러티브가 만든 후기 근대영화의 근대적 연속이 아닌 영화적 이미지와 사건을 통한 변화와 생성을 보여주는 영화는 신도 가네토(新藤兼人)와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의 <벌거벗은 섬(裸の島)>(1960)과 <일본곤충기(にっぽん昆蟲記)>(1963)이다. 탈근대적 미래의 희망보다는 탈근대적 근대의 고백에 중점을 두고 있는 신도 가네토 감독은 1951년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하여 소위 일본 영화의 독립영화시대를 열었고, <원자폭탄의 아이들(原爆の子)>(1952)을 텅한 탈근대적 근대의 고백영화를 기점으로 1960년 모스크바영화제에서 <벌거벗은 섬>이 그랑프리를 차지하며 서구영화들의 탈근대적 근대의 고백영화들과 나란히 탈근대의 영화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우리에게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赤い橋の下のぬるい水)>(2001), <간장선생(Kanzo Sensei)>(1998), <우나기(The Eel)>(1997), 그리고 <나라야마 부시코(Narayama Bushiko)>(1982)와 같은 탈근대의 영화들로 아주 잘 알려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탈근대적 근대의 고백보다는 일본 근대화 과정의 비주류이면서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들의 여성성 발현과 남녀의 여성적 관계가 지니는 탈근대적 희망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벌거벗은 섬>은 “아이를 잃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제외하고는 단 한 마디의 대사도 나오지 않는” 이미지와 사건으로만 이루어진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마지막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객을 긴장시켜 스스로 영화의 이미지들과 수없이 많은 대화와 사색을 하도록 만든다. 근대적인 내러티브의 측면에서 영화는 “세토 내해의 작은 섬에서 보리와 고구마를 키우며 살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라고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섬에서 부부가 밭에 물을 주기 위하여 새벽부터 근처의 또 다른 섬으로 가서 물을 길어오며 배에 올라 노를 젓는 모습이나 물지게를 지고 움직이는 섬세한 발자국들, 그리고 아침을 먹기 위하여 어린 두 아들을 포함한 가족 전체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미지들은 삶과 노동의 소중함과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당한 농민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들이 지니는 삶이 진실을 전달한다. 물지게를 지고 섬의 언덕을 오르는 여성의 몸짓은 마치 춤사위를 하는 춤꾼의 예술이고, 고기를 잡는 어린이들이 작살을 휘두르는 모습은 기술과 인간이 결합한 예술적 세련됨을 보여준다. 삶과 노동, 그리고 놀이 속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근대적 소수자들의 이미지는 결코 지배와 피지배나 선과 악이라는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서술구조에 갇혀있을 수가 없다.

<벌거벗은 섬>에서 부부의 모습은 함께 노동하고 함께 생활하는 평등한 두 생명체의 이미지일 뿐이다. 이러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하나는 여자가 밭에서 실수를 하여 물통의 물을 엎지르는 이미지의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아내가 물통을 엎질러버리고 밭에 있는 고구마 줄기들을 파헤치면서 오열하는 이미지의 장면이다. 첫 번째 장면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가 사정없이 따귀를 갈겨버린다. 따귀를 맞은 여자는 묵묵히 다시 물지게를 지고 섬 언덕을 내려가 물을 길러 간다. 두 번째 장면에서 남편은 아내를 보고 못 본 척 하면서 마음속으로 오열을 하며 묵묵히 고구마 줄기 구덩이에 물을 준다. 남성은 분노를 표현하고, 여성은 슬픔을 표현한다. 이와 더불어 남성은 과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여성은 결과에 대한 즐거움을 향유한다. 분노의 표현은 과정에 대한 책임이고, 슬픔의 표현은 결과에 대한 고통의 울부짖음이다. 여성은 남성의 과정에 대한 책임에 순응하고, 남성은 여성의 결과에 대한 즐거움과 고통을 공유한다.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이 되고, 결과에서 남성은 여성이 된다. 아들의 죽음이 내포하고 있는 의학이라는 근대화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부부가 지니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너무나 아름다운 조화로운 상생!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 국가는 근대적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고착시키고 강화시키기 위하여 농민과 같은 소수적 남성의 여성성을 빼앗고 소수적 여성의 남성성을 강탈했다.

전근대적인 천황제를 토대로 한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한 이후에 등장한 <벌거벗은 섬>과 같은 진지한 탈근대적 근대의 고백은 전지구적인 이데올로기적 냉전체제가 무너진 1980년대 이후의 탈근대 영화들을 주도한 이마무라 쇼헤이의 <일본곤충기>에서 더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간장선생>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나듯이 단적으로 말해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일본의 근대사를 “일본곤충기”로 보고 있다. 이것은 정말로 근대적 의미의 언어학이나 심리학의 학문이 이야기하는 은유나 상징의 언어가 아니다. 실제로 일본 근대사는 소위 일본 근대인이라고 일컬어지는 곤충들이 역사이며 곤충들의 삶이다. 곤충들이 기록한 일본 근대의 역사는 힘과 폭력을 구사하는 권력을 지닌 곤충과 힘과 폭력에 이리 좇기고 저리 쫓기는 권력이 없는 곤충들만이 있을 따름이다. 곤충들의 관심은 어떻게 사느냐나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가 아니라 단지 생명을 유지하여 살아남는 것일 뿐이다. 내 옆에서 수없이 많은 곤충들이 죽어가거나 피를 흘려도 아무런 관심이 없이 단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똥이나 버러지를 먹으면서라도 살아남아 있는 것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심지어 곤충은 자신이 살기 위하여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연인이나 친구도 무참히 살해하거나 전쟁터에 보낸다. 우리는 곤충으로부터 질기디 질긴 삶의 생명력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1919년에 야마가타의 산골에서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고 태어난 “스기모토 도메”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지체 장애인의 아버지를 이상적인 남편으로 생각하고 마치 아버지와 친구나 연인의 관계인 것처럼 자라난다. 그가 인간이라는 동물로 자라나는 순간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린 시절과 초등학교 시절뿐이다. 도메가 곤충이 되고 곤충으로 살아가는 일본 근대의 서술은 “도메”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직공장의 공원으로 일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도메는 여성 노동자를 관리하는 마츠나미의 여자가 되고, 자신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누구의 씨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는다. 1945년의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마츠나미는 노동운동가가 되고, 도메는 여성 노동자를 지휘하는 노동운동의 간부가 된다. 그러나 과장이 되어 중간관리자가 된 마츠나미는 도메의 곁에서 떠나 자신의 살 길을 찾고, 도메는 동경으로 가서 미군 파출부의 역할을 하게 된다. 섹스를 통한 생명성의 발현이라는 그녀의 곤충적 욕망은 미군의 현지처의 아이 목숨을 앗아가고, 도메는 일본 근대화의 식민주의적 제국주의로 흥성하는 신흥종교단체에서 콜걸이 되고, 마침내 콜걸 조직을 운영하는 “마담뚜”가 된다. “도메”는 자신을 곤충으로 만드는 일본 근대의 구조 속에서 마침내 중간 크기의 힘과 권력을 지닌 곤충이 되어 다른 힘이 약한 곤충들을 죽이거나 파괴시킨다.

영화 속에서 곤충이 되지 않고 인간이라는 동물로 존재하는 남성은 오직 약간의 지체 장애인으로 등장하는 도메의 아버지와 미군 현지처를 따라다니는 재일 “조선인”(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인이 지체장애인인지, 아니면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언어장애인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뿐이다. 그들이 곤충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지체 장애인이기 때문에 일본 근대라는 곤충들의 그물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도메가 콜 걸 조직의 운영으로 감옥에 갔다 온 사이, 산골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도메의 딸도 곤충이 될 위험에 빠진다. 그러나 곤충들의 역사를 지닌 일본 근대가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다. 우리의 근대사와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이라고 영원히 “곤충기”의 역사를 지니고 있을 수는 없다. “도메”의 딸은 마치 <벌거벗은 섬>에 등장하는 부부처럼 남자친구와 함께 산골에 자율적인 농장을 만들어 운영하여 “일본곤충기”의 근대적 역사에서 벗어나고, 아직도 곤충들이 우글거리는 도쿄의 근대적 구조가 지니는 곤충들의 그물망 속에서 그녀의 어머니인 “도메”를 구출한다. 곤충들의 세계에서 인간들의 세계로 가는 “도메”의 걸음걸이는 뒤뚱거린다. 그녀는 마침내 도쿄의 곤충들이 신고 다니는 뾰족 구두를 벗어버리고 맨발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간의 걸음걸이를 할 수 있다.

<일본곤충기>와 같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탈근대 영화들은 아직 근대의 탈을 벗어버리지 못한 근대적 관객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간장선생>은 근대적 지식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우나기>는 근대적 소시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과 <나라야마 부시코>는 소위 문화(culture)로 포장한 문명(civilization)의 이기라고 할 수 있는 근대적 교양을 수단으로 근대적 남성세계에 길들여져서 생성적이고 창조적인 여성성을 상실한 근대적 여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마무라 쇼헤이의 탈근대 영화들을 보는 불편함은 마치 도메의 뾰족구두가 산길을 걷는데 불편함을 주는 것처럼 근대적인 지식인과 소시민, 그리고 여성들이 근대적 곤충들의 세계에서 탈근대적 인간들의 세계로 넘어가는데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정서적 감각의 불편함이다. 그렇게 오랫 동안 곤충들이 세계에 살았던 “도메”가 자신의 삶의 고향으로 가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처럼 근대적 지식인과 소시민, 그리고 여성들이 이마무라 쇼헤이의 탈근대 영화들을 보며 느끼는 심기의 불편함은 잃어버렸지만 아직도 마음 저 구석에서 나의 삶을 지탱시키고 그래도 살아있는 것에 대한 희망을 부여하는 인간이라는 고향의 감각과 정서이다. 정말로 문제는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여기지 못하거나, 심지어 탈근대 영화가 제시하는 불편함을 근대적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에 길들여진 곤충들의 잣대로 가치를 폄하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잘못된 신화와 계몽의 근대적 예술관이다.

IV. 동아시아의 탈근대적 한류열풍과 일본의 탈근대성

전 지구적으로 940년대 후반 이탈리아 영화의 네오 리얼리즘,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일본과 프랑스의 누벨 바그, 그리고 1960년대 후반의 뉴 저먼 시네마는 1990년대 후반과 21세기의 초 대한민국의 탈근대 영화들로 계승되고 있다. 우리의 탈근대 영화들이 그 모태가 되는 네오 리얼리즘, 누벨 바그, 뉴 저먼 시네마와 같은 영화들과 다른 점은 이전의 영화들이 아직 완전히 근대가 청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후기 근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들과 탈근대의 트랜스모던 영화들의 구분이 애매모호한데 반하여 우리의 영화들은 “트랜스모던(trans-modern)의 특성들을 아주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은 최근 중국이나 베트남, 혹은 대만이나 태국 등등의 동아시아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한류 열풍과 소위 근대의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에서 일어나는 한류 열풍의 차이에서 아주 뚜렷하게 드러난다.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에서 알고 있는 한류 열풍은 1990년대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달성한 “주체적 서구화”에 대한 열풍이다. 서구의 문명을 침략적이고 파괴적인 형태로 경험한 동아시아 국가들 속에서 가장 일찍 서구의 제국주의로부터 탈피한 북조선의 주체성은 1990년대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달성한 남한의 민주주의적 역량과 결합하여 남한의 대중문화가 지니는 “주체적 서구화”의 모습으로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수많은 희생을 치룬 베트남이나 중국의 경우에 나름대로 근대화를 달성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미국의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거의 미국 대중문화와 흡사한 한국 대중문화는 그들이 아주 강력하게 요구하는 “주체적 서구화”의 근대적 코드와 아주 잘 연결된다. 물론 통일이 되지 않고 통일의 저해가 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진통을 겪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에서 우리의 “주체적 서구화”가 어느 정도 진실한 것인지는 다시 되새김질 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의 군대가 서울의 한 복판에 아직 건재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달성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정도는 우리의 성숙한 “주체적 서구화”의 문화적 역량을 충분히 자랑해도 모자라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일고 있는 한류 열풍은 분명히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한류 열풍과 질적으로 다르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일본의 한류 열풍은 최근 일본의 중년여성의 “욘사마 열풍”처럼 “주체적 서구화”에 대한 열풍이 아니라 주체적이거나 식민지적인 남성적 근대성과 아주 동떨어져 있는 한국 남성이 지니는 겸손하고 따뜻한 “탈근대적 여성성의 발현”에 대한 열풍이라고 할 수 있다. “욘사마 열풍”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드라마 <겨울연가>에 등장하는 배용준은 부드러운 여성적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남성/여성의 이분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부드러움의 강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마치 어머니와 같은 남자의 이미지를 지닌 “탈근대적 여성성”의 인물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을 제외한 근대적 완성도가 낮은 동아시아의 한류 열풍이 남성과 여성의 구분 없이 각 나라의 전국적인 현상인데 반하여, 일본의 한류 열풍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근대의 완성도가 높은 일본 남성을 제외하고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수소자로 내몰린 일본 여성의 반란처럼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미 언론에서 드러난 것처럼 아시아의 유럽이나 동아시아의 일본제국을 꿈꾸는 일본의 근대권력 체계 속에 들어가 있는 남성들의 “제국주의적 서구화”가 지니는 일본 여성들의 한류 열풍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독도문제나 일제 36년의 역사 왜곡 문제보다 더욱 강렬하다. 일본의 소수 남성들과 여성들은 이미 아주 강력한 탈근대적 삶의 방식 속에서 영화와 같은 탈근대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일본이나 유럽의 1950년대와 60년대의 탈근대 영화들, 그리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탈근대 영화들은 한 결 같이 근대의 국가주의(자국, 자민족 중심주의)의 역사읽기에서 벗어난 탈근대의 노마드적 역사읽기, 남성 중심적 폭력주의에서 벗어난 여성적 관계의 생산성, 인간중심주의의 권위주의나 개발주의에서 벗어난 자연 생태주의의 평화적이며 상생적인 공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대적으로 고착된 공간 속에서 시간의 변화를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변화에 의한 공간과 공간 속에 있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개체의 생성을 보여준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간장선생>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일본이 근대적 제국주의와 아류 제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근대적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근대성과 대한민국 식민주의적 근대성이다. “미국-일본-대한민국”이라는 근대적 지배권력의 서열체계에서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권력체계가 벗어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의 식민권력이 아닌 노무현 정권은 일본의 근대권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하고,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아주 유연하게 일본의 근대권력이 무너지는 것을 일본 민중들과 더불어 마치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들을 즐기듯이, 혹은 일본이나 대한민국의 탈근대 영화들을 감상하듯이 서로서로를 즐기고 서로서로를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한 상호생성과 상호변화는 일본과 대한민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지구촌 전체를 탈근대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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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일제 식민지 문제와 일본 탈근대 영화들 <- 현재글

장시기
200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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