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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이 온다, 괴물이 온다, 디즈니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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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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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8


예고 드린대로 오늘은 디즈니와 Pixar 스튜디오가 만든 3D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Monsters, Inc.)에 대한 이야기다.

나를 키운 것은 8할...까지는 아니고 한 2할은 '디즈니'였던 것같다. 초등학교 시절, 토요일 저녁 TV에서 나지막하게 "When You Wish Upon a Star"가 흘러나오고, 신데렐라의 성 위로 팅커벨이 금가루를 휘리릭 뿌릴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곤 했다. TV를 영락없는 '바보상자'라고 생각하셨던 부모님도 <디즈니랜드>만은 '안전'하다고 여겨 별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방학 때 가끔씩 극장에서 개봉하는 <피터팬>이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따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열심히 관람시켜주시기도 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환상적인 그림, 자유분방하고 귀엽고 당당한 어린이들, 용감한 영웅들, 무시무시하지만 결국은 죽을 것이 분명하여 저으기 안심되던 악당이나 괴물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들, 그리고 자상하고 이해심 많은 어른들... 내가 원하는 모든 환상이 그 속에 있었다. 웃기는 추측이지만, 내가 영문과에 진학하여 영어권 문명의 수입상 겸 번역자 노릇을 하고 있는 데는 어린 시절에 디즈니를 통해 보았던 미국 문화, 혹은 서구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한몫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곧 디즈니의 '유치함'을 깨달았고, 더 이상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게 되었다. 디즈니를 졸업하면서 나는 내가 비로소 철이 들었음을 알았고, 그제서야 디즈니 만화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더랬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에게 디즈니 만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디즈니의 비디오에 PC 게임에, DVD까지 사줘가며 말이다. 적어도 '상품화된 환상'으로 디즈니만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이 드물다는 생각도 있고, 어쨌거나 나이를 먹으면서 디즈니를 '졸업'할 날도 있을 거라는 판단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몬스터 주식회사>(Monsters, Inc.)를 보러갔다.....

각설하고, <몬스터 주식회사>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본적인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만큼 충분히 재미있다. 일단 '밤마다 벽장에서 튀어나오는 괴물'이라는, 어린아이 눈높이의 공포심을 이용한 발상과, 괴물들도 사실은 다 먹고 살자고 '직업상' 무서운 것이라는 설정이 기발하다. 게다가 그래픽이 죽여준다. 개인적으로는 타이틀의 경쾌하고 산뜻한 그림과 색채가 예뻐서 아주 맘에 들었거니와, 수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주인공 설리번의 털 300만개(세어봤나? 아무튼 '서류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가 제각각 움직이는 모습, 570만개(이것도...세어봤나?-.-;;)의 문들이 오가는 액션씬, 게다가 히말라야로 추방된 설리번의 털에 눈가루가 묻어 휘날리는 장면....후... 입이 딱 벌어진다.

게다가 경쾌한 음악과 정교한 효과음, 실제 그 나이의 어린 여자아이를 마이크 들고 계속 따라다니면서 녹음했다는 부(Boo)의 때때거리는 목소리도 정말 실감나게 귀엽다. 3D 애니메이션에서 제일 어색한 것은 사람의 묘사인데,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장난감이나 벌레, 괴물 등이 말하고 움직이는 것보다는 실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부의 경우도 사실 형상만 놓고 냉정하게 말하면 정말로 사람같이 실감이 난다기보다는 잘 만들어진 플라스틱 인형같은 모습이지만, 그런 어색함을 '진짜'같은 목소리 연기가 벌충해준다. 영악한 것들 같으니....게다가 전체적인 짜임새로 말하면 <해리 포터>보다 훨씬 단순하면서도 기발하고, 내내 숨쉴 틈 없는 긴박감이 넘친다. 픽사에서 만든 작품들이 다 그러하듯, 애들은 좋아서 뒤집어지고, 어른들도 입을 헤벌레~~하며 즐거워 한다.

항상 문제는, 어른 입장에서 보면 이게 그냥 화려한 볼거리로만 비치지 않고, 뭔가 껄끄러운 것이 조금쯤 남는다는 거다. 그림에 홀려서 마냥 신나게 보고 나서는, '그런데....이게 뭔 얘기지?'하며 고개 갸우뚱하게 만드는 거다.

동화와 만화의 구도를 뒤집은 드림웍스사의 <슈렉>이 크게 인기를 끌었던 올해, <아틀란티스>로 완전히 맛이 갔다는 평을 들은 디즈니사는 절치부심했던 것같다. '뒤집힘'을 당하는 입장이란 '주류'라는 증거도 되지만, 아무튼 뒤집힘을 당하는 쪽보다야 뒤집는 쪽이 재미에 있어서는 한발 앞서 나갈 수밖에 없는 법. 게다가 만화는 발칙함이 생명 아니던가. 그런데 그동안 디즈니에서 해왔던 '뒤집기'라고 해봐야 <토이 스토리2>에서 "내가 네 아버지다"라는 <스타 워즈> 패러디나, <벅스 라이프> 캐릭터 등장시킨 것이 고작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젠 뭔가 확 뒤집어 보여주자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괴물'이다. 자, 과거 수많은 이야기들에서 용감한 왕자님에게 배때기를 찔려 죽거나, 지구를 지키는 용사들에게 붙잡혀 현상금을 벌어주었던,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는 '해피 엔딩'을 위한 불쌍한 제물이 되어왔던 '괴물'들이 이번엔 주인공이 된다.

배경은 괴물들이 사는 '몬스트로폴리스'(Monstropolis). 주인공 제임스 설리번(너무나 평범한 회사원같은 이름!)은 인간의 아이들에게 겁을 줘서 나오는 비명소리를 채집하여 그 에너지로 이 도시의 동력을 공급하는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겁주는 자(scarer)이다. 괴물들의 도시는 놀랍게도 미국의 여느 대도시들과 전혀 다름이 없고, 몬스터 주식회사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이나 커다란 회사들과 흡사하다. 작업장 전면에는 세계 전도가 걸려있고, 괴물들은 각자 자신의 특기를 살려 오늘은 미국 동부지역으로, 내일은 네팔로, 모레는 극동지역으로, 그 다음 날은 유럽으로, 아이들의 비명 소리를 채집하러 나간다. 다른 편 벽에는 개인별로 실적이 기록되고, 그날의 실적에 따라 순위가 바뀌며, 괴물들은 저마다 그 순위에서 한 계단이라도 올라서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괴물들은 아이들에게 겁을 줄 때에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회사 안에서는 맡은 일을 잘해서 실적을(그리고 연봉도) 올리고 싶어하는, 아리따운(!-.-;;) 괴물 아가씨에게 '작업'들어가서 스시 집에서 데이트도 하고 싶어하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괴물이 아이들에게 겁을 줘서 그걸로 동력을 삼는다는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따지고 보면 해마다 아이들이나 처녀를 제물로 바쳐 괴물을 달래는 옛날 얘기보다 조금 더 '근대화' 된 버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괴물은 인간에게서 '에너지'를 얻어가야 살 수 있다는 사실, 혹은 괴물이 기본적으로 인간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아'야만 살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게 괴물의 얄궂은 운명이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강대국이 약소국으로부터, 식민지 모국이 식민지로부터, 군수업체가 전쟁터로부터 무엇인가 얻어내서 자신의 생존 수단으로 삼듯이.

이 거대한 주식회사를 운영하는 자들은 괴물들에게 인간의 아이들이란 절대로 접촉하거나 교류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한다. 괴물을 털복숭이 인형 정도로 여기는 당돌한 여자애 하나가 우연히 들어와 온 도시가 쑥대밭이 되는 상황을 보면, 괴물들의 세계가 '타자'(인간)에 대한 공포심과 경계심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알고보니 불쌍한 건 괴물에 겁먹어 소리 지르는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죽는 줄 알고 기겁을 하는 괴물들이었다!

자, 여기까지가 참신한 발상의 전부다. 몰래 숨어 들어온 여자아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좌충우돌하는 과정은 장면장면 입이 딱 벌어지게 하기에 충분하지만, 결말은 뻔한 거 아니겠는가. 어차피 디즈니인데...쩝.

서로 손 하나도 건드릴 수 없는 사이인 줄 알았던 아이와 괴물 사이에 애정이 싹트고, 무사히 아이를 돌려보내고, 나쁜 넘들을 처단하고, 아이에게 공포감을 주는 대신 사이좋게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악당들은 사라지고.....디 엔드. 부분적으로 나쁜 넘들이 음모를 꾸미긴 하지만, 언제나 선량하고 능력있는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게 되고, 괴물 도시의 체제를 책임지고 감시하는 CDA(Child Detection Agency)도 결국은 '정의'의 편에 서서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고, 그게 디즈니의 세계 아니던가. 그리고 그게 디즈니가 보여주는 '미국' 아니던가.

그렇게 괴물과 인간의 아이들이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리고 미국이 그렇듯 이질적인 집단들이 평화롭게 서로 도우며 공존하는 세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면야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질 않은 걸. 여전히 '괴물' 혹은 '귀신'은 문 앞에 와서 우리를 겁주고 있는 걸. '비명 한 번 지르면 안 잡아 먹~지'하는 식으로 겁을 주기도 하고, 살살 구슬러 우리가 헤헤 거리며 정신 못 차리는 사이 뭔가를 빼앗아가는 지도 모르는 걸. 그래서 나같이 삐딱한 어른들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어딘가 불편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웃의 토토로>가 그러했듯이 덩치 크고 귀여운 괴물과 겁없는 소녀 사이의 따뜻한 애정을 보며 기분 좋아지고, <슈렉>이 그러했듯이 커다랗고 힘 센 놈과 별 거 없이 수다스러운 놈 사이의 삐그덕거리는 조화에 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어느새 <몬스터 주식회사>는 결말로 치달아 간다.

이제 괴물은 어린이의 친구인가? 괴물을 보며, 그리고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며 깔깔 웃는 아이들은, 그 괴물의 '재롱'이 단지 친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웃음의 에너지를 빼내어 괴물 도시의 동력을 충당하려는 '사업'의 일부였다는 걸 알고 난 후에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괴물들은 <벅스 라이프>의 벌레들처럼 사람의 세계와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존재들도 아니고,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들처럼 사심없이 어린이에게 사랑받고 어린이와 '친구'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존재들도 아니다. 이질적이고,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재미있게, 괴물들은 어찌되었든 어린이들을 상대로 '사업'을 벌여야 한다. 어린이와의 만남은 '작업'이 된다. 그런 경제적 토대를 알게 되는 순간 아이들은 철이 들고, 괴물은 철이 든 아이들의 벽장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그렇게 '디즈니'의 세계를 졸업한다....

그러나 <몬스터 주식회사>는 보는 동안만큼은 이런저런 어설픈 생각들을 덮어버릴만큼 재미있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야 이 삐딱한 어른은 이게 뭐냐....하는 생각을 이리저리 굴려보게 된다. 그러니 나를 비롯한 수많은 어른들도 아직 '괴물'을 보고 깔깔 웃어대는 어린아이와 다를 게 없기도 하다.

귀신이... 아니, 괴물이 온다. 괴물이 문 앞에 왔다. 이미 문을 열고 들어와 때로는 협박을, 때로는 웃음을 선사하며 우리 사이를 돌아다닌다. 어느새 그 괴물은 이미 '손님'이 아닌 '우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영영 '디즈니 제국'을 졸업하지 못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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