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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

작성자

장시기

작성일자

200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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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6


독재권력의 하수인들에 대한 풍자와 해학 -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

1979년 10월 27일 아침 7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입시에 실패한 나는 학원에 가기 위하여 만원버스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졸음을 쫓고 있었다. 정릉에서 출발한 버스가 미아리 고개를 넘어 돈암동 정류장에 도착했을 즈음, 바로 “그 때”다. 버스의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노래가 멈추고, 긴급방송이라면서 아나운서는 아무런 단서도 붙이지 않고 “대통령 유고, 대통령 유고”만을 반복했다. “유고(有故)”라니? 무슨 사고가 났다는 거야? 그 이후 “그 사람들”에 대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난무했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 때” 이후로 수없이 많은 세월이 수많은 사건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지속되었던 “그 사람들”에 대한 나의 무관심의 이유는 아마도 “그 사람들”이 나와 다른 종류의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때”와 마찬가지로 <그 때 그 사람들>이라는 영화를 보는 지금도 그렇다. 나는 “그 때”에 관심이 있지,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없다. 그러나 영화는 나를 실망시켰다. 아니 영화가 나를 실망시킨 것이 아니라 나는 영화를 보는데 필요하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영화관에 들어간 것이다. 영화는 “그 때”에 대한 관심이 없고, 오직 “그 사람들”만을 보여준다. “그 때”와 관계를 맺는 “그 사람들”에 대한 판단은 모두 관객의 몫이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때”와 “그 사람들”이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의 바로 “그 때”에 김재규씨와 그의 부하들에 대한 변호를 맡았던 나이 80이 넘으신 이돈명 변호사 외 몇몇 동료들과 영화를 보면서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던 것은 <자우림>의 김윤아가 궁정동 만찬의 한 여자였던 심수봉 역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노래를 수단으로 70년대 판 궁상을 떠는 여인과 2000년대 판 궁상을 떠는 여인의 유사한 이미지. “나는 <쿨>한 여자니까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또 다른 궁정동 만찬의 여인의 대사를 들으면서 여전히 “그 때”를 개인적으로 회상하는 망상에서 벗어난다. “그 때”의 역사성에 집착하고 있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지 마시라. 분명히 이런저런 궁시렁 궁시렁 소리와 더불어 “돈이 아깝다”를 연발하면서 극장을 나와야 하니까?

그러나 영화에는 분명히 “나는 쿨한 여자니까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하는 젊은 대학생 여자가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도 그 어느 곳인가에 존재하고 있음직한 “그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독재권력”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영화에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자유로운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바로 “그 때”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 모든 중요한 대사는 “일본어”로 모두 씨부렁 씨부렁 거려서 자막처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남아있지만 “그 사람들”은 모두 일제 식민지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이었다.

아,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쿨한 여자”라고 말한 그 여자. 노래만을 부르는 심수봉. 그리고 문제의 그 인물, 김재규는 자유로운 사람이었을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두 여자를 제외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김재규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아쉽다. 그것은 아마도 중앙정보부장이라는 “그 때”라는 독재 권력의 핵심에서 갖는 자유는 망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배우 백윤식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진지한 듯한 인물 이미지의 연기는 현실적 토대를 둔 삶의 자유가 아닌 머리나 두뇌 속의 자유가 얼마나 망상에 가까운가를 아주 실감하게 만든다.

나름대로 김재규에게 박수를 치면서 불쌍하고 안타깝다. 자신의 삶에서 끊임없는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과정이 없이 독재 권력의 영토 속에 갇혀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는 깨달음의 탈영토화는 재영토화를 통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상대적) 탈영토화가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향하는 (절대적) 탈영토화에 가깝다. 시인이나 음악가와 같은 예술가에게 이러한 탈영토화는 불후의 명작을 낳을 수 있다. 김재규도 그렇다. 그는 그의 마지막 삶으로 그 어느 소설이나 시, 그리고 영화로도 묘사가 부족한 “대통령 유고”라는 불후의 명작을 낳았다. 그러나 그는 시인도 아니고 음악가도 아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시나 소설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다.

문제는 김재규 작 “대통령 유고”라는 불후의 명작에서 민대령(김응수 역)과 주과장(한석규 역), 그리고 “명령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충직한 부하 영조와 순박한 준형,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끌려나온 경비원 원태, 그리고 해병대 출신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지목된 운전수 상욱”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들은 그들 자신도 모르게 영화나 소설의 조연 역으로 발탁되어 스스로 조연인지도 모르고(어쩌면 스스로 조연임을 알고 그냥 조연에 충실하기로 다짐을 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 조연의 역할을 담당한다. 깨달음은 아주 순식간에 오는지도 모른다. 운전수 “상욱”이 “그래, 도망쳤어야 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김재규가 자신만의 “불후의 명작”을 쓸려고 했으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했어야지...

“그 때”가 아닌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때”라는 것이 나름대로 “그 사람들”에 의하여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때”를 추측할 수 있는 나름의 실마리들도 있다. 술 따르는 여자와 노래 부르는 여자 이외에 “그 사람들”에 포함되어 있는 여자가 없다는 것. 독재 권력의 울타리 속에 있는 사람들은 남성들과 소수의 자발적인 여성들뿐이라는 것. 삶에서 우러나는 자유가 아닌 망상 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유에 대한 욕망은 비록 “불후의 명작”이라고 할지언정 “죽 써서 개 주는 꼴”이라는 것. 자신이 조연인지도 모르고 조연 역할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길은 권력의 울타리 근처에 가지도 말고, 어쩌다 근처에 있으면 무조건 줄행랑치라는 것. 그리고 “그 때”의 권력구조는 일본어만이 관계적 의미를 지니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연속이라는 것.

이러한 여러 추측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가 아니라 “그 사람들”을 실컷 비웃어주고 영화 스크린이 지니는 풍자의 힘에 매료되기 위하여 <그 때 그 사람들>은 나름대로 볼만한 영화다. 가수 <자우림>의 김윤아가 아니라 영화배우 김윤아를 보는 재미도 나름대로 쏠쏠하고, 백윤식과 한석규의 개성적인 연기도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그 사람들”이 담당하고 있는 국가라는 거대한 깡패조직의 우스꽝스러움을 풍자와 해학으로 변형시켜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든 임상수 감독의 재치라고 할 것이다. 분단시대의 가족을 풍자와 해학으로 보여준 <바람난 가족>의 서글픈 재미는 분단시대의 국가라는 거대한 가족의 풍자와 해학으로 변형되어 <그 때 그 사람들>에 나타난다. 실컷 웃고 서글픈 과거에 대해 애도의 눈물을 뚝뚝 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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