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세미나들

 *영미연 안팎 소식

 *이달의 학술행사

 *문화 리뷰

 *다른 집 가기

 *책읽기,세상읽기

연구회소개 / 회원가입 / 분과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제   목

 [하울의 움직이는 성] 미야자키 할배, 사랑을 말하다

작성자

성은애(펌)

작성일자

2004-12-27

이메일

조회

4574


출처: finching.net

혹자는 이제까지 보았던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짜깁기라고도 하고, 매너리즘이라고도 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저 나이 할배가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일본 내 최대흥행기록, 깐느 영화제 기술공헌상 수상, 은퇴 번복, 베를린 영화제 수상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후 3년만의 신작....화젯거리에 비해서 사실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에 대한 입소문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캐릭터는 귀엽고 디자인도 멋진데 스토리 라인이며 구성같은 것이 좀 어설프고 느슨하다는, 그런 얘기들을 한쪽 귀로 들으며 극장으로 향했다.

한편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너무 산만하고 널널하고 느슨하여 실망스럽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이제까지 미야자키의 애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면도 돋보였다. 미야자키 하야오, 1941년생. 며칠 있으면 우리 나이로 65세. 오래 해먹기로야 둘째가라면 서러울 교수 노릇을 했어도 이젠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잔소리나 늘어놓고 있을 나이에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가, 신기해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미야자키 애니메이션들 중에서 몇몇 성공적인 스토리 라인은 여자 아이의 성장이라는 주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귀여운 두 자매가 숲 속의 정령 토토로와 더불어 조금씩 커가는 [이웃의 토토로]가 그러하고, 철딱서니 없는 응석받이 치히로가 강인한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그러하고, 소녀에서 여성으로 넘어가는 애매한 시기의 착잡함을 아기자기한 상징 속에 담아낸 [마녀 택급편]이 그렇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미야자키의 작품에서는 남성보다는 여성 인물이 훨씬 생동감이 넘치며 매력적이다.

이제 그 모든 성장 스토리의 종합편으로 소피라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치히로같은 아이도 아니고, 키키처럼 마악 사춘기에 돌입한 소녀도 아니다. 조금 더 성숙한, 그러나 아직은 세상도 남자도 모르는 어린 처녀다. 하루 종일 모자 가게에 앉아 자신은 평생 쓸 일도 없는 화려한 모자들을 만들던 소피는 우연히 그림같이 아름다운 청년 마법사를 만난다. 그와의 첫 만남, 그리고 황홀한 비행. 그 비행 장면은 미야자키 작품의 모든 비행 장면이 그러하듯 경쾌하고 가슴 설레는바 있다. 마치 첫사랑의 짜릿함처럼 말이다.

소피의 마음을 달뜨게 만든 그 꽃미남 마법사는 알고보니 미녀들의 심장만 먹어치운다는 '움직이는 성'의 하울. 과연, 문자 그대로 뭇 여성들의 마음(=심장=Heart)을 먹어치운다 할만하다. 여기에 당연히, 훼방꾼이 등장한다. 하울의 심장(=Heart)을 원하는 황야의 마녀다. 온통 전쟁에 동원되는 강압적인 애국주의, 군국주의의 분위기 속에서 하울과 황야의 마녀는 둘 다 그런 체제가 싫어서 체제 밖으로 뛰쳐나간 인물이지만, 불행히도 둘 사이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아름답지 못하면 살 가치가 없다 여기는 하울과, 서너겹으로 늘어져 겹쳐진 목살과 걸쭉한 음성, 대마도같은 펑퍼짐한 몸집으로 하울의 마음을 갖겠다고 덤벼드는 황야의 마녀가 어디 가당키나 한 얘기냔 말이지, 도대체 그림이 안 되는 거 아닌가.

결국 질투심에 불탄 황야의 마녀는 소피를 90살 먹은 노파로 만들어버린다. 이로써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젊거나 어린 여성이 아닌,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이한 여정을 선택하게 된다. 두리뭉실한 몸집, 굼뜬 동작, 사그라든 목소리, 주름진 얼굴, 조금만 움직여도 온 몸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는 할머니가 되어버린 소피는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내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그 좁은 골방 작업실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가 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 애니메이션은 주인공 소피가 소녀의 활달함과 노파의 재치와 여유를 번갈아 발휘하면서 전쟁으로 난장판이 된 세상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내고, 그와 함께 전쟁이 내놓는 온갖 비인간적인 유혹과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저주를 풀고 또한 사랑하는 사람도 구원하는, 그런 얘기다. 한 소녀가 저주를 풀고 한층 '업그레이드' 된 여성으로 성장하는 데에 이제는 '사랑'이 개입되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그저 살짝 암시만 되거나 막연한 친밀감이나 동료애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다분히 독점적이고 에로틱하며 절박한 형태의 그런 사랑, 흔히 말하는 연애 감정 말이다.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저주를 풀어가려는 과정에서 소피는 하울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소 산만하고 지루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온갖 배려와 희생과 노력과 분투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온갖 과정들이 사실은 전쟁으로 쑥밭이 되어버린 세상과 군국주의의 깃발 아래 구성원들을 동원하려하는 체제의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아울러 보여준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들이 온전하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거다. 혹은, 좀 더 과격하게 말하면, 전쟁을 멈추게 만드는 것, 군국주의의 깃발을 내리도록 하는 것만이 사랑이라는 것. 따라서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전쟁도 끝나야 한다. 아니, 전쟁의 종식과 동시에 이들의 사랑이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미야자키옹은 그렇게 심각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지는 않는다. 이런 저런 주제들을 그는 슬쩍슬쩍 건드려만 줄 뿐, 결사적으로 파고들지는 않는다. 노인의 여유로운 눈으로 약간은 장난기 있게 이들의 얽히고 섥힌 연애 스토리를 재미나게 들려줄 뿐이다. 다들 이거 좀 봐, 얘네 귀엽지? 라고 하는 듯이 말이다. 마치 말년의 셰익스피어가 치열하고 강렬한 비극의 세계에서 로맨스의 세계로 접어들었듯이 말이다. 전쟁도, 사랑도, 저주도, 이 모든 심각한 상황들도 마치 설리먼이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며 '자, 이젠 전쟁 그만 하지 뭐'라고 심드렁하게 한마디 하면 다 뒤집히듯이, 그렇게 뒤바뀔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냐면, 이 모든 것은 다 어차피 '마법'이란 말이지. 그리고 미야자키옹은 그 모든 것 위에서 이들을 굽어보며 빙그레 웃고 있더란 말이지. 마법이라니깐, 마법.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한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지.

전작들에 비해 좀 짜임새는 떨어지는 스토리 라인 대신, 여전히 흥미로운 캐릭터들은 미야자키옹의 여전한 위력을 보여준다. 보기만해도 욕지기가 나올 정도로 혐오스러운 황야의 마녀를 피하려고 온갖 알록달록한 부적을 붙이고, 장시간을 욕실에서 몸치장으로 시간을 보내며, 머리 색깔 하나에 목숨을 걸고, 그러면서도 사는 곳은 온갖 삐걱거리는 흉칙한 쇠붙이들로 완전 무장해놓은 하울의 히스테리칼한 캐릭터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주인공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내게도 지켜야 할 것이 생겼어!"는 흔히 남자 주인공들이 멋지게 내뱉는 대사지만, 그 대사 이후 공중으로 날아올라 전쟁에 끼어드는 순간 하울은 문자 그대로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캐릭터다.

물론 뭐니뭐니해도 작품을 이끌어가는 소피의 변화 무쌍한 얼굴 모습과 다면적인 캐릭터는 단연 이 작품의 핵심적인 볼거리거니와, 군소 인물들이 주는 재미도 만만치 않아 즐겁다. 아, 허수아비의 막판 변신은 좀 확 깨더라. 소피의 동생 레티와 소피의 어머니 등 뭔가 좀 더 역할을 했을 법하다가 사라진 인물들도 좀 아쉽다. 하울의 성이나 전쟁의 스펙터클에 비해 자연 풍광의 디자인이 조금 식상한 것도 맘에 걸렸다. 자연은 어쨌든 '실물'이 있는 것이라 거기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일까?

아이들은 좋아라하고, 조금 머리 큰 세대는 썰렁하다 한다. 그리고 아마 나이 먹음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한 세대라면, 미야자키옹이 왜 그나이에 새삼 할머니가 된 소녀와 그 소녀의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는지 약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생각도 든다. 미야자키 할배라면 조금쯤 널널해진 것도 나쁘지 않다. 만수무강 하시라.



 

   관련글 제목

작성자

작성일자

조회

[하울의 움직이는 성] 미야자키 할배, 사랑을 말하다 <- 현재글

성은애(펌)
2004-12-27
4574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랑"과 "마법(지식)"

장시기
2005-01-03
4538

 

 

 

연구회소개 | 회원 가입  |  분과 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운영위  |  안과밖편집위  |  자료실편집위 |  영미문학연구 편집위 |  출판기획위번역평가위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SES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