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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에르네스토가 본 것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4-11-14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4362


체 게바라는 1928년생이고 얏세르 아라파트는 1929년생이니 거의 비슷한 연배다. 한 사람은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싸우다가 서른 아홉의 나이로 CIA의 총에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일흔 다섯이 되도록 오래오래 살아 노벨 평화상도 받고, 테러리스트에서 정치가로 변신도 하고, 그 과정에서 꽤나 욕도 먹고 그랬다. 한창 나이가 아까와서 그렇지, 마흔살 되기 전에 죽은 체 게바라는 노회하게 늙은 아라파트에 비해 여전히 젊은 혁명가로 남아있다. 젊어서 아깝게 죽은 사람은 영원히 젊은이로 남는 보상을 받는 법. 우리는 할아버지가 된 체 게바라를 굳이 상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순결하고 정직한 영혼을 지닌 혁명가 체 게바라가 우리나라에서 '팔리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도 정말 어떤 배우보다 멋지게 생긴 체의 사진이 박힌 셔츠며, 뱃지, 가방들은 '쿨'한 젊은 세대의 감성을 자극한다. 덕택에 그다지 얄팍하지도 않은 체 게바라 평전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원작 중 하나인 체의 남미 여행기 역시 "이지 라이더와 자본론의 만남"이라는 카피와 함께 팔려나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의 남미 여행기에 기초한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Diarios de Motocicleta, 2004)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중앙역](Central do Brasil, 1998)이라는 인상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리우 데 자네이로 출신의 감독 월터 살레스(Walter Salles)는 할리우드 출신이 아닌 남미 배우들을 동원하여 젊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남미 여행기를 산뜻하게 만들어냈다. 낯익은 배우라고는 최근 내가 재미나게 본 스페인어 사용하는 영화에 맨날 나오는 것같은([아모레스 페로스]의 옥타비오, 그리고 [이 투 마마]의 훌리오. [나쁜 교육]은 아직 못 봤다...) 멕시코 출신의 젊은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Gael Garcia Bernal) 뿐이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 나오는 체 게바라는 아직 '체' 게바라가 아니다. 그는 에르노스토라는 의대 졸업반 학생이며, 남미 대륙을 여행하고 싶다는 젊은이다운 소망을 가진 럭비 선수이고 천식 환자일 뿐이다. 그는 6살 위인 알베르토 그라나도(Aberto Granado)와 함께 '포데 로사'라는 고물 오토바이를 끌고 아르헨티나를 출발, 칠레와 페루를 거쳐 베네수엘라까지 여행하는 계획을 세운다.

영화는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의 대조적인 성격을 부각시키며 잔잔한 웃음을 선사하면서도, 스물 셋 젊은이의 눈에 비친 남미 대륙의 모습을 에르네스토의 시선 그대로 보여주는 데 치중한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라는 두 젊은이지만, 동시에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에르네스토가 본 남미대륙"이다. 관객들은 에르네스토의 입장이 되어 낯선 남미 대륙 구석구석을 돌면서 에르네스토가 봤던 사람들을 함께 만난다. 그리고 에르네스토가 느꼈던 감동과 연민과 분노와 변화를 함께 느끼게 된다.

특히나 책에서는 그냥 막연한 상상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장면들을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화면으로 보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크다. 광산에서 만난 가난한 부부, 쿠스코에서 마주친 스페인어를 모르는 인디오들, 안데스의 오지로 갈수록 서구인보다는 아시아 인종에 가까와보이는 얼굴들, 남미의 피비린내나는 과거의 흔적들, 부익부 빈익빈의 착잡한 현실들, 황량하면서 숭고한 느낌을 주는 풍경들, 마추픽추의 감동, 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에르네스토가 느꼈던 감흥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음을 본다.

감독은 후에 '완벽한 인간'이라는 찬사를 들은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될성부른 나무...'식으로 이상화하지도 않으며, 유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한 역사 드라마 풍의 이야기로 만들어놓지도 않는다. 감독은 성격이나 기질이 판이하게 다른, 그러나 대륙과 인간에 대한 열정적인 탐구심이라는 점에서는 통하는 두 젊은이의 여행을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면서도, 그것이 후에 체 게바라가 성취한 바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도록 만드는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물론 다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굵고 멋지게 생긴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머릿 속에 각인된 관객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유약해보이는 꽃미남 스타일의 배우가 썩 어울리지 않아보일 수도 있겠으며, 막강 '구라빨'에 '영구 작업모드'로 일관하는 '느끼남' 알베르토의 성격 설정에 비하여 에르네스토의 성격 설정에 안정감과 섬세함이 좀 부족해보이는 느낌도 받을 수 있겠다. 그러나 체 게바라의 전기 영화로서가 아닌, 후에 혁명가가 된 한 평범한 젊은이가 본 남미 대륙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더 초점이 가있는 영화라는 점, 따라서 에르네스토의 내면보다 오히려 그가 본 것 자체를 관객들과 공유하려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결점들은 오히려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 있겠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정치적인 주장도 논쟁도, 엄숙한 위인전도, 멋진 사나이 체 게바라를 둘러싼 자본주의의 마케팅도 거부한다. 그저 정직하고 열정적인 한 젊은이의 여행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에르네스토가 본 것을 같이 볼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그러나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에르네스토의 젊음과 열정이 그 이후 '체 게바라'로서의 행보와 겹쳐지면서 그가 추구했던 남미 혁명의 대의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영화의 밑바닥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감동을 강요하지 않으나 어느새 은근한 감동을 느끼게 되는 영화. '체 게바라 마케팅'으로 딱이 성공할지도 의심스럽다. 빨리 극장으로 달려가서 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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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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