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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씨 9/11] 무어 아찌의 나라 구하기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4-07-23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3854


주연 조지 W. 부시, 출연 앨 고어, 딕 체이니, 존 애쉬크로프트, 도날드 럼스펠드, 오사마 빈 라덴, 빈 라덴 패밀리, 콘돌리자 라이스, 콜린 파월, 특별출연 벤 애플랙, 로버트 드니로, 스티비 원더, 리키 마틴, 아아..그리고 브리트니 스피어즈, 이렇듯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Fahrenheit 9/11, 2004)은 아마도 출연진의 화려함에 비해서 개런티 지출이 가장 적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연 배우가 가장 혐오하는 영화라는 기록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은 처음부터 정치적 의도를 매우 분명히하고 들어가는 영화다. 뉴스 클립과 인터뷰, 현장 촬영 등, 다큐멘터리에 사용되는 방식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사실'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그 '사실'들을 특정한 정치적 주장으로 향하도록 매우 특수한 방식으로 조합해놓은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통상적인 '다큐멘터리'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아주 불편하거나 경멸할만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매우 간단하고도 강렬하다. 부시 나쁜 놈, 이라크 전쟁은 말도 안 됨, 부시가 재선되면 '절때' 안 됨. 끝.

이 메시지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별로 새로운 것을 알려주지 못한다. 다만 이미 알고 있고 동의하고 있는 내용을 좀 더 재치있게 구성해 내놓을 뿐이다. 아마도 일부러 개봉 첫날 이 영화를 보러간 대부분의 한국 관객들에게 마이클 무어는 별로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지는 못할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라크 침공이 부당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을 것이며, 부시의 재선을 열망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러나 부시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이라크 전쟁이 왜 말이 안되는 전쟁인지, 잘 모르고 있거나, 긴가민가 하는 정도의 생각을 가진 관객에게라면 이 영화는 상당히 '계몽적'인 효과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이클 무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관객층도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자랑스러워하고 미국을 사랑하며, 미국 내에서 투표권을 가진, 그러나 왜 부시의 재선이 재앙인지 아직은 확신하지 못하는 평범한 '애국시민'들이다. 반전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기네들을 모욕하는 것이라 여기던 평범한 군인 가족, 계급적 이해관계는 노동계급적인 것이면서도 선거때만 되면 괜히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름만 공화당원'들, '서민'이면서도 정치적 의견은 자본가들의 것과 일치시키는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이라크 전쟁은 물론 한국의 추가 파병이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미국인 입장에서 만든 '국내용'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다 아는 얘기만 늘어놓는다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무어 특유의 재치와 연출력은 9.11 이후 미국의 정치인들과 언론이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며 부당한 침공을 정당화해나가는 광기어린 과정을 섬뜩할만큼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 자신은 바로 그 시기에 미국에 체류하면서 언론의 광기어린 여론몰이 과정을 실제로 지켜보았거니와, 마이클 무어의 시선은 그 당시 내가 느꼈던 혐오감과 분노를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빈 라덴 가문과 부시 일가의 유착관계를 설명하는 전반부의 꼼꼼함이나, '애국법'의 통과로 인한 인권 침해의 사례들도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체육관에서 정치 얘기 했다가 FBI의 조사를 받아야 했던 웬 아저씨의 사례는 70년대 '막걸리 보안법'의 사례들을 연상케 한다.

영화의 후반은 이라크 침공에 바쳐지는데, 이라크에서 찍은 필름 중 일부는 인터넷이나 언론에 공개된 클립들도 있지만, 작전 수행 과정이나 겁에 질려 울부짖는 이라크 주민들의 모습, 그리고 직접 전투에 가담하는 미군들의 인터뷰 등은 매우 생생하고도 충격적이다. 군인 가족이라는 데 자부심을 품고 매일매일 성조기를 집 앞에 게양했던 여인은 이라크에 보낸 아들을 잃고나서야 아들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이 알 케에다가 아닌 조국의 정부라는 것을 깨닫고는 백악관 앞에서 오열하는데, 무어의 메시지는 바로 이 여인의 각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침공 부분은 대체로 매우 무겁고 심각하지만, 이 영화 곳곳에선 마이클 무어 특유의 기지와 풍자적 유머가 빛난다. 전작들에 비해선 많이 줄어들었지만 마이클 무어 자신이 직접 황당 이벤트를 벌임으로써 시선을 집중하고 이슈를 환시기키는 기법들도 사용된다. 아이스크림 판매 차에 타고 애국법 조항들을 읽어주는 무어, 국회의원들에게 자식을 이라크에 보내라고 입대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무어의 모습도 유쾌한 웃음과 조롱, 뼈아픈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해준다.

무엇보다 편집의 묘미는 무어의 영화를 보는 주요 재미 중 하나다. 정말 싸가지 없는 부시의 발언들, 우스꽝스러운 표정들은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 미국같은 강대국의 국민으로서 좀 쪽팔린다는 느낌을 불러 일으키며, 방송 앞두고 매무새를 단장하는 각료들의 표정도 재미있다. (특히 월포비츠의 머리 손질에 주목!) 부시의 말을 고스란히 부시에게 되돌려주는 마무리도 압권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되도록 부시와 그 측근들을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하여 발언의 앞뒤 맥락을 다 잘라먹고 그것을 전혀 다른 상황에 끼워넣어 웃음과 조롱을 과하게 유발하려 했다는 느낌도 든다. 메시지의 효율적인 전달을 위해서 불가피한 일일 수도 있고, 그러한 압축과 편집이 결국 상황의 핵심을 좀 더 잘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모든 편집들이 재미와 메시지 전달의 효율성을 위해서 다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이것은 자칫하면 이 영화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마이클 무어, 대단한 일 했다. 이 영화의 흥행이 많은 부분 깐느에서의 수상 덕분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도 그러하고 우리 나라에서도 이 영화가 되도록 많은 관객들을 끌어모으는 일은 중요한 것같다. 마이클 무어가 돈을 벌었으면 좋겠대서가 아니라, 미국에서는 다가오는 대선에 대한 정치적 관심을 좀 더 폭넓게 환기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추가 파병에 대한 논의를 다시 환기시킨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 형식을 빈 영화들도 인권 영화제 같은 데서가 아니라 일반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고 또 어느 정도 수요가 있다는 것이 입증 되는 것은 영화계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이 다음에도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많이 수입될 수 있을 테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화들이 제작되어 어엿하게 극장에 걸리는 일들이 많아질 것 아닌가. [송환]이 그러했듯이.

그러니 어쨌거나, 무조건, 기필코 극장에 가서 보시라. 나는 개인적으로 [볼링 포 콜럼바인]이 더 재미나고 훌륭한 영화라고 여기며, 진지하고 절박한 메시지의 면에서는 [로저와 나]에 점수를 더 주고 싶지만, [화씨 9/11]도 재미로 치면 꽤 괜찮은 편이며. '시의성'에 있어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부시=악의 축' 이라는 구도가 오히려 '부시적'인 사고방식 아닌가, 민주당에 대한 언급은 왜 없는가, '음모론'에 스쩍 발을 걸치고 있으면서도 어물쩡 넘어가는 거 아닌가, 부시를 너무 조롱하면 오히려 그에 대한 동정론을 유발할 수도 있지 않은가 등등, 이 영화의 내용에 관한 소소한 비판은 많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지만, 그 모든 비판은 "쪽팔리는 줄 아쇼, 부시!"라고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에서 생중계로 외치던 그의 용기와 '상식의 힘'을 충분히 인정한 후에 보낼 일이다. 이 거대한 덩치의 미시건 촌 아저씨,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말아먹은 나라를 어떻게 좀 시궁창에서 건져내보려고 애 많이 쓰고 있다. 기특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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