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세미나들

 *영미연 안팎 소식

 *이달의 학술행사

 *문화 리뷰

 *다른 집 가기

 *책읽기,세상읽기

연구회소개 / 회원가입 / 분과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제   목

 [트로이] 사람이 하는 일이란....

작성자

자료실(펌)

작성일자

2004-05-31

이메일

조회

4323


성은애 선생님 홈피에서 퍼온 영화평입니다. 원문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finching.net/bbs/view.php?id=fff&no=135

영미연 영화평 꼭지의 고정/인기 필자이신 성선생님이 요새 영미연 영화평 꼭지에 이전만큼 글 공급을 안해주시는 듯해 이쪽에도 신경 좀 써주십사 공개청탁(^^;;) 차원에서 성선생님 허락도 받지 않고 퍼왔습니다. 더욱이 영웅 서사시를 극화한 <트로이>의 영화평이니 이건 꼭 영미연 회원/손님들도 같이 읽어야 할 글이라고 판단한 것도 '무단 펌질'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필자께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

[트로이]사람이 하는 일이란....


날이 더워지니까 할리우드산 블록버스터가 상륙했다. 엄청난 제작비와 화려한 배우들을 자랑하는 볼프강 피터슨(Wolfgang Peterson) 감독의 [트로이](Troy, 2004)다. 사실 나는 영화에 대해 끼적거리기를 즐기는 것치고는 영화를 전혀 많이 보는 편이 아니어서, 볼거리는 많은데 줄거리는 허접...이런 소문이 돌면 그냥 보지 않고 건너 뛰어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올 여름 블록버스터 행렬의 시작을 알리는 [트로이]를 보게 된 것은 아무래도 이게 그래도 호머의 서사시에서 줄거리를 따온 거라나 뭐라나.....하는 알량한 문학도의 핑계에 힘입어서다.

그러나 피터슨 감독의 [트로이]는 호머의 서사시 [일리어드]와는 두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우선 이야기의 중간에서(in medias res) 시작되는 서사시의 관습과 달리 영화는 전쟁의 발발 동기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나 안해!'하며 삐져버린 아킬레스에서 시작되어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마무리되는 [일리어드]와 달리, 오디세우스가 궁리한 트로이의 목마와 트로이를 휩싸는 엄청난 불길, 그리고 아킬레스의 죽음과 아이네아스의 탈출까지를 보여준다. 호머의 [일리어드]가 주요리만 턱 던져준다면, [트로이]는 전채 요리에서 디저트까지 차곡차곡 내어주고 냅킨으로 입까지 닦아주는 꼴이다.

두번째 차이점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번갈아 보여지며 서로 교차하는 [일리어드]와는 달리, [트로이]는 철저하게 인간 세계의 관점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오비드의 [변신]이나 그리스 신화 등에서 언급되는 신의 개입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그러다보니 트로이 전쟁의 원인으로 알려졌던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아레스가 던진 황금 사과를 사이에 두고 다투는 세 여신과, 세 여신의 심판관을 맡게 된 파리스의 스토리는 생략된다.

또한 아킬레스가 발목 뒤의 '아킬레스 건'만 제외하고 불사의 몸이 된 사연이나, 그리스의 동맹군을 모아 트로이 원정에 나선 아가멤논이 신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딸을 제물로 바치는 사연 따위는 모두 생략된다. 물론 트로이편과 그리스편으로 나뉘어 서로 꼬집고 뜯고 싸우는 신들의 모습도 나오지 않으며, 파리스의 투구 끈을 끊어 그의 목숨을 구해준 아프로디테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트로이 전쟁의 '신화'는 '역사'가 된다. 전설 속의 도시 트로이가 발굴가들의 끈기로 인해 실제의 도시로 밝혀졌듯이, 트로이 전쟁은 올림푸스의 신들이 개입하여 휘젓는 인간사가 아니라, 트로이 해변의 모래사장과 높은 성벽 안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가 된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전해졌던 헬렌의 미모는 그녀 하나때문에 수천 척의 배와 수만명의 군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에게해를 건너올 정도로 뛰어나진 않다. 취향에 따라 달리 말할 수도 있겠으나, 아줌마같은 "뽀글이 파마'에 철딱서니 없는 캐릭터로 레골라스의 쿨한 이미지를 한방에 박살내버린 파리스(Orlando Bloom 분)의 '무개념 청년' 이미지와 아주 '세트'로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라고 보인다. 그러니까 거꾸로 트로이 전쟁이 헬렌을 빼앗긴 메넬라오스와 헬렌에게 구혼했던 수많은 동맹국 군주들의 '의리' 때문이 일어났다는 설명은 애초부터 그 설득력을 잃는다.

용감하고 결단력있는 명장으로 여겨지던 아가멤논(Brian Cox 분)은 이 영화에서 아주 심하게 망가져버린다. 그는 주변의 국가들을 힘으로 제압하며, 그들을 지배하고, 동맹의 이름으로 파병을 강제한다. 이타카 같은 조그만 나라의 군주인 오디세우스(Sean Bean 분 -- [반지의 제왕]에선 일찌감치 죽어버려 서운했던 보로미르, 안뇽?)의 말에 따르면 자기네는 아가멤논같은 강력한 적을 감당할 수 없단다.

원수지면 자기네만 힘들어지니, 어쨌거나 명분없는 전쟁이라도 나와서 싸워야 하고, 가능한한 빨리 전쟁 끝내고 집에 갈 궁리를 하는 게 낫다는 거다. 마누라 빼앗기고 펄펄 뛰는 메넬라오스(Brendan Gleeson 분)는 그냥 허깨비다. 말을 잘 다루는 사람들이 사는 번성한 도시국가 트로이, 동서간 무역의 요충지인 트로이를 자신의 영향권 하에 두고 싶은 아가멤논의 야심에 아주 좋은 핑계를 제공할 뿐이다.

원작에서 트로이를 함락시키고 무사히 에게해를 건너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물론 아가멤논에게는 비참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을 영화에서는 아예 트로이 전쟁의 현장에서 바로 죽여버린다. 그것도 그리 영웅적이거나 멋진 죽음이 아니라, 나쁜 놈이니까 죽어야 한다는 정도로 그려진다. 결투하다가 비굴하게 형의 다리를 부여잡는 파리스를 보호해주려고 결투의 규칙을 어기고 메넬라오스를 찌르는 헥토르는 확실히 명예와는 거리가 먼 치사한 행동을 했다. ("아....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되나...?"하는 헥토르의 비통한 표정은 압권!)

그러나 관객들로서는 헥토르의 '반칙'보다는 '메넬라오스가 죽어따....!!'는 쾌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런....-.-;;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에 대한 감독의 편향된 묘사는, 명분이야 어찌 되었건 모든 전쟁은 탐욕과 권력욕에서 시작되고, 따라서 이런 엄청난 전쟁을 시작하는 놈들은 나쁜 놈들이다...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해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핵심은 한층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한 장대한 전투장면들과, 두 영웅, 아킬레스(Brad Pitt 분)와 헥토르(Eric Bana 분)의 팽팽한 대결구도이다. 그저 싸움을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싸울 뿐이며, 그래서 어딘가 불안정하고 쓸쓸해보이는 아킬레스는 트로이 전쟁이 자신의 마지막 싸움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불멸의 이름을 위해 마지막 순간을 살아가는 아킬레스는, 자신의 불안함을 메꿔줄 여인을 찾아내고, 그녀로 인해 적에게 자비와 관용을 베푸는 법을 배우지만, 결국은 그녀로 인해 죽는다. 여성관객을 의식했음인가? 요 대목은 약간 촌티나는 멜로드라마 되시겠다. [일리어드]에서도 그러하지만, 영화에서도 아킬레스는 다혈질이고 불안정하며 싸움에서는 무적이요 정치적 술수는 빵점이다. 이런 복잡한 영웅 아킬레스의 이미지를 브래드 피트는 아주 무난하게 잘 소화해냈다.

헥토르는 아킬레스의 놀라운 무공(도움닫기 후 점프하여 45도 각도에서 오른쪽 상반신 찍어내리기는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아킬레스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데 적당했다)을 이겨내기엔 약간 힘이 부치기에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일단 삐지면 '나 안해!'라고 개겨버리는 '도꼬다이' 스타일의 아킬레스에 비해 그는 효성 지극한 아들이며, 조국애로 뭉쳐진 용감한 전사다.

"신을 섬기고, 자신의 여인을 사랑하며, 조국을 지킨다"는 매우 간단한 코드에 의해 평생을 살아왔다는 이 싸나이는, 실제로 옆에 있다면 참 속이 터지고 갑갑할 것같기도 하지만,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매우 인간적이며 멋지게 보인다. 그는 한낱(?) 신탁에 의해 군인으로서의 자신의 합리적 판단이 묵살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도, 끝까지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는다.

저런 아들이 죽었다면 아버지가 누구든, 프리아모스왕(Peter O'Toole 분)처럼 용감하게 적진으로 잠입하여 아들을 죽인 자의 손에 입맞춤하고 시신을 돌려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권위적인 아버지와 엇나가는 아들이 아닌, 신뢰와 충성으로 맺어진 부자-군신 관계란 비현실적인 만큼 뭔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에릭 바나의 섬세한 표정이 헥토르의 이미지를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블록버스터 중에선 화려한 화면이 연속으로 뻥뻥 터져나가도 졸음이 마구 쏟아지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썩 인상적인 부분은 없는데 그런대로 무난하고 거슬리지는 않는 영화도 있다. [트로이]는 아마 후자에 속할 것이다. 엄청난 스펙터클에 감동까지 밀려왔더라면 좋았겠지만, 그정도는 아니다.

아마도 영화의 큰 틀을 짜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색깔을 부여하는 감독의 입지가 엄청난 물량과 특수 효과로 인해 좁아진 것같기도 하다. 브래드 피트나 에릭 바나의 팬이 아니라면 딱이 열광할 것은 없으되, 보고 나서 욕할 대목을 찾기도 딱이 쉽지는 않는 영화. 러닝타임 좀 길다. 화장실 미리 다녀오셔야 한다.



 

   관련글 제목

작성자

작성일자

조회

[트로이] 사람이 하는 일이란.... <- 현재글

자료실(펌)
2004-05-31
4323

 

 

 

연구회소개 | 회원 가입  |  분과 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운영위  |  안과밖편집위  |  자료실편집위 |  영미문학연구 편집위 |  출판기획위번역평가위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SES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