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르네상스분과

 *근대 영문학 분과

 *현대 영문학 분과

 *비평이론분과

 *미국문학분과

 *기획세미나

연구회소개 / 회원가입 / 분과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분과 자료실 / 분과 공지 / 분과원 소개 / 분과 프로젝트 / 분과 게시판 / 분과 초기화면
 

제   목

 학술대회 발제문들을 읽고(1)

작성자

유희석

작성일자

2012-06-30

이메일

yoohuisok@yahoo.com

조회

2037


동학여러분,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지난 1월 이곳에 도착해서 간단한 인사말씀 올리고 거의 6개월만입니다. 이곳의 풍경이나 생활도 이젠 무척이나 익숙해졌는데, 그동안 한국은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었던 것 같더군요. 아무튼 뭘‘안식’하라는 안식년인지는 모르겠지만 식구들이나 저나 평화롭게 지내면서 마음을 다독이고 있지요.

동학들께서 보내주신 이번 학술대회 발제문은 진작에 읽었습니다. 반응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제야 몇자 적습니다. 작년에 진행된, 학술대회 준비 세미나라고 해야 할 분과모임에 저도 적극적이었던 터라 일종의 의무감 비슷한 것도 사실 느끼거든요. 하지만 얼마나 내실 있는 독후감이 될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제 전공 분야도 아니고요. 다만, 발표하신 여러 선생님들이 어차피 방학 중에 개고를 하셔서『안과밖』지면에 실을 예정이라면―그런 거 맞죠?―결과적으로 학술대회 당시의 토론을 뒷북치는 한이 있더라고 전혀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몇마디 적어볼까 합니다. 한달 가까이 되어가는 지금쯤 아마 토론의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고요. 주로 발표하신 선생님들이 제기한 논문의 문제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공간에서 저의 변변찮은 독후감에 대한 반응이 있다면 저도 대화를 더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김의영선생님의「미국문학과 황야: 수전 하우의 실험적 평론」,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잊혀진, 버려진, 숨겨진 생명의 표시를 들춰내는 작업”으로 『모반』을 규정하고 그런 작업의 의의를 소개한 논지에 적극 공감합니다. 읽으면서 이 논문을 영어로 쓴다면 서술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영미권의 대학원생들,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하우의 평론집 내용을 그렇게 세세하게 소개하는 절차는 불필요했을지 모르니까요. 그 대신 하우의 어떤 특정한 문제의식을 잡아서 파고드는 작업을 더 집중적으로 해야 했을 겁니다. 아무튼 김의영선생님의 발제문은 그 양자를 모두 시도하고 있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더 좋게 읽었는데, 개고의 과정에서는 소개를 하면서 동시에 하우의 논지를 더 파고드는 논술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볼 수도 있겠지요.

물론 논점을 더 명확히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개고 논문에서는 그렇게 되겠지요.) 가령 하우의『모반』―개고할 때는 한자를 명시해줘야 하겠지요. 호손의‘모반’보다는 treason을 떠올릴 독자가 더 많을 테니까요―을 논의 주제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좀더 확실한 학술적 해명이 필요할 듯해요. 김은영선생님은 하우 저작의 의의를“1990년대 한참 유행했던 탈정전 문화연구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는 작업이기 때문에 독특하고 흥미롭다”고 규정하고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지요. 하우의 시도가“다른 양상을 띠는 작업”임은 발표문에서 어느 정도는 드러났다고 봅니다. 그 시도의 내용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 편이고요. 그런데 조금 꼼꼼하게 짚어보면 하우의 문제의식은 탈정전 문화연구자들도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반율법주의’는 물론이고 하우가 출판업을 하나의 거대권력으로 간주한다든가, 호손, 멜벨, 코울리지의 저작에 어른거리는 여성의‘지워진 노동’을 복원하는 시도라든가, “주류문화가 억누르는 야생성”등등은 문화연구자들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지요. 문화연구나 탈정전주의 등의 흐름과 하우의 작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만나고 갈라지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치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하우의 (실제)비평도 어느 정도는 소개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하우의 이 저작을 읽으면서 성찰의 분방함도 물론 마음에 들었지만, 더 좋았던 것은 ~~주의로 포섭될 수 없는 하우의 직관적 통찰이었던 것 같아요. (읽는 재미 자체도 상당했던 책으로 기억되는데, 부담 없이 읽은 파편들이 어느 순간 일정한 형상의 그림으로 맞춰지는 경험도 안겨줬거든요. 딱 맞아떨어지는 그림은 아니었습니다만.) 하우가 정전주의에 반대하는 논자임은 더말할 나위 없지만 반정전주의 내지는 정전해체주의에도 결코 호응하지 않을 사람처럼 느껴지거든요. (이 대목에서는 하우 선생에게 개인적으로 배운 동학이 있으시다면 한마디 거들어주실 법하네요.) 그건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점은『모반』에 부록처럼 붙어 있는 “Talisman Interview”에서도 분명합니다. 호손이나 멜빌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공세를 묻는 인터뷰어의 질문, 가령 “Some people want Hawthorne out of canon or at least on a lower rung since he’s said to be a sexist”라든가 “Well, what about those who say Moby-Dick will no longer be read because there are no women in it”라는 질문에 대한 하우의 솔직하고도 위트 있는 답변도 그런 짐작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물증이 되겠지요.

『모반』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거기에 반율법주의와 함께 황야도 포함되겠지요. 발표문 2절에서 하우가 구사하는‘황야’의 개념을 소개하신 셈인데, 김의영선생님이 적절하게 지적하셨다시피 하우가 뜻하는 바“황야는 문명과 대비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미국문명 또는 문학에 내제되어[sic] 있는”거지요. 그렇게 대비되는 개념으로 설정한 논자가 다름 아닌 페리 밀러이고 따라서 하우의 비평은 페리 밀리적 황야에 대한 해체작업도 되는 셈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unsettling the wilderness”라는 표현은 김의영선생님도 지적했다시피 묘한 뉴앙스를 담고 있지요. “ "unsettle"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정착지에 적용될 수 있는 행위이지 황야에 적용될 수 있는 행위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맞아요. 그런데 이때의 unsettle을 “정착 과정을 되돌린다”고 새기면 좀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건 말 그대로“ 미국문학의 역사”에 내재한 ‘the wilderness’를 unsettle한다는 거지요. 이때의 unsettle은 사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하우의 ‘사전’에서는 wilderness가 antinomianism과 통하는 말이고 후자는 Lawlessness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그런 맥락에서는 unsettle은 wilderness를 ‘풀어놓는다’로 새기는 편이 적절할 지도 몰라요. 한자로는 방생(放生)의 의미를 담고 있겠지요. 물론 이때도 핵심은 하우가 제시하는바‘wilderness’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뭔가겠지요. (발표문에 이런저런 어색한 번역들이 눈에 띄지만 개고하는 과정에서 바로잡히리라 봅니다.)

다른 한편 unsettle의 용법은 해체주의에서 애용한 개념적 함의를 띠고 있기도 합니다. 영어의 unlearn같은 단어가 그렇지만 월러스틴 같은 논자는 unthink라는 표현을 동원해 기존 사회과학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하우의 ‘unsettle’이 바로 그런 취지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요. 그렇다면 하우가 저작에서 탈피, 또는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된 것은 무엇인가는 물음도 필연적이지요. 하지만 하우는 비평가면서 시인인터라 그런 대상을 결코 단순하게 제시하지는 않지요. 본질상 단순하게 제시될 수 없는 건지도 몰라요. 한가지『모반』의 ‘독특함’을 귀하게 생각하는 독자로서 드는 의문 가운데 하나는, 그 발화 형식의 창의적인 파격, 또는 ‘파편화’로 인해 오히려 더 밀고나갈 수도 있는 성찰의 지평이 제약받은 면은 혹시 없는가는 겁니다. 『모반』의 열정적 파격은 독자에게 그런‘의심’도 한편으로는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비평가는 언제나 이성의 언어만을 구사한다는 생각도 통념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하우의‘방생’ 작업에 대한 김의영선생님의 좋은 발표가 어엿한 논문으로 결실 맺기를 바랍니다.

유재은, 이정진 선생님의 발표문에 대해서는 몇일 후에 소감을 올리겠습니다.

쏠트레이크 시티에서
6/29 유희석드림

 

   관련글 제목

작성자

작성일자

조회

학술대회 발제문들을 읽고(1) <- 현재글

유희석
2012-06-30
2037

 

 

 

연구회소개 | 회원 가입  |  분과 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운영위  |  안과밖편집위  |  자료실편집위 |  영미문학연구 편집위 |  출판기획위번역평가위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SES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