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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분과독서모임 자료입니다.

작성자

이일수

작성일자

2009-08-25

이메일

sue1218@naver.com

조회

2948


문제의 제기: 한국계 미국문학 작가들의 근대시민의 실현(self-empowerment)

1. 민족의식

* 19세기 서구유럽의 민족주의 대두에 대한 Habermas의 논평.
National consciousness--which crystallized around the fiction of common descent, the construction of a shared history and the grammatical unification of a written language--had been propagated here at first by intellectuals and scholars. The idea of the nation also fitted in well with the administrative requirement of the modern state apparatus for uniform living conditions. Starting with the urban bourgeoisie, it gradually spread through modern mass communications to the rest of the population. ("National Unification and Popular Sovereignty" tr. Patrick Camiller, 1996년 서울대에서 행한 Tseo-nam lecture 발표문)
* 하버마스가 서구의 근대화과정을 설명하면서 19세기 들어 주로 지식인과 중산계층이 민족개념을 고안하여 유포했고, 그 후 백여 년의 시간을 거치며 점차 그것이 일반대중에게 퍼졌다고 한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에서의 민족개념, 한겨레라는 민족적 자각은 지식인과 중산계층의 주도성이 비교적 미흡하고 주로 외세에 저항하여 자주성과 생존권을 되찾으려는 생계형, 대중주도형 봉기와 의식화 작업을 통해 촉발되고 확산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사회가 경험한 일련의 사건들, 양반과 부자, 선비를 배척함을 원리로 삼았던 동학사상, 1899년 시작된 농민주도의 활빈당 기치는 ‘자유평등’ ‘사회빈부타파’라는 근대시민의식을 담았거니와, 3.1만세운동의 성과 또한 지식인 주도의 독립선언이 있었으나 그 시기의 사회가 다양한 사상적 계층적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맞물리는 복잡성을 띠고 있었음에도 기층주도의 정치의식이 있었기에 만세운동이 삽시간에 전국적인 규모를 획득한 점이 그러하다.

* 미국으로 이주가 시작된 20세기 초 한국사회의 상황은 근대시민으로서의 각성과 민족의 자주권을 획득하려는 노력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통합되어있는 국면. 그러나 식민주의 지배를 겪게 됨으로써 해방의 과제가 좀더 시급한 것으로 요청되는 상황.

* 근대적 시민의식을 확립하려는 시도와 외세에 대한 저항이 본질적으로 다른 과제가 될 수 없었던 한국의 식민정국에서 시민으로서 생존권과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요원하고 부담스러운 것이어서, 좀더 조속한 시일 내에 개인의 삶의 반경 속에서 근대시민의 정치적, 사회적 자유를 얻고자 한 자기 권력부여가 미국이민의 주된 동기. 1세대 작가들의 작품이 다소 사변적 경향으로 치우치는 것도 어찌보면, 스스로에게 근대적 개인의 권리를 부여하고자 했으나 그 권리발현이 근거지로 삼고 있는 당대의 민족단위 기반을 거부/결여한 데서 오는 당혹감의 표현.
1921년 뉴욕항에 도착한 한청파에 대한 묘사: It was so that the individualist was born, the individualist, demanding life and more life, fulfilment, some answer to his thronging questions, some recognition of his death-wasted life, some anchor in thin air to bring him to earth though he seems cut off from the very roots of being. (Kang, Yonghill, East Goes West, 1937, 9면)

* 농장 노동자 신분으로 하와이에 이주한 집단이 생계형 이주였다면, 식민치하에서 일본식 교육을 거쳐 삶의 과제를 근대인의 완성으로 삼게 된 지식인과 중상류층 일부에게는, 이 과제가 민족단위의 삶에서는 실현불가능한 과제로 인식되었음, 또 다른 일부는 자신들의 일본친화적 교육과 경험이 해방된 한국의 공적 공간에서 관대하게 수용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일가족이 정치적 망명을 행하기도.-> 개인의 정치적 결정이 해방공간에서는 비난과 숙청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데서 오는 당혹감. 해방 이전부터 남과 북의 이념이 대립되는 속에서 제3의 중립지역을 택하는 의미를 지녔던 미국이민도 근대화를 추구하는 개개인이 내린 일종의 정치적 결정이라 하겠는데, 문제는 근대화만을 추구하는 결정을 내리면 그것이 민족의식과 배치될 수도 있었던 식민현실이 공적 공간의 정치적 비평과 납득을 생성하는 근대시민의 존재 자체를 불가능하게 했음. 한마디로 시민대중이라는 실체 없이 근대시민이라는 그림자에 맞닥뜨린 것.

* 개인의 정치적 결정에 대한 사회적 비평의 경험이 전무한 해방정국의 상황. 공적공간에서 그 결정들에 대해 자유롭게 비평하고 그 논쟁적 비평이 현실의 또 다른 결정들을 형성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반드시 기반역할을 해주어야 할 근대시민의 존재가 무르익지 못했음. 개인이 내린 정치적 결정들이 공적 공간에서 익명의 다중에게 수평적 시선으로 비평되거나 가치 평가되는, 초유의 역사적 경험을 하게 됨. 따라서 한국계 미국인들은 정착 1세대부터 개인 삶에서의 제반 삶의 결정을 할 때 하나의 거대담론으로서 민족모순이 개입하는 힘에 대해 그 실감하는바가 더욱 복잡하고 뒤틀려있음. 더욱이 근대적 의미에서의 제반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데서의 개인의 자유, 그 결정에 대하여 공적 공간에서 자유로이 논의하고 비평받으며 결정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문제에서는 민족단위의 사회형식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음. 미국이민 역시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입장>민족일원으로서의 결속.

* 이민1세대 이후 작가들에게서는 과거와 절연한 채 자유로운 삶의 결정들을 내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또한 불가능해야 마땅하다는 깨달음이 엿보임. 그들의 새로운 탐구는 국경을 넘어서는 공동의 이해와 연대가 필요하지만 그간 애써 외면했던 민족단위 결속이 개인에게 근대시민의 권능을 부여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그러한 종류의 민족의식이 엿보임. 미국사회의 외관상의 다문화적 경향은 각 집단 고유의 민족문화와 사회배경을 초월한 새로운 사회형식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상 각 집단의 민족적 기억과 경험 중 특정 부분과는 은밀히 결속하여 각 집단을 서열화해왔다고 볼 수 있음.

* 물론 이들이 이민자들에게 각자의 고유한 민족단위 기억과 경험을 고수하고 주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특정 인종과 민족 집단을 상위지배 서열에 놓는 것에 대하여 전 구성원의 순순한 동의를 구해내기 위해, 미국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보장해주겠다고 내건 기치가 바로 근대시민의 완성. 이는 근대화되고 열려있는 공적 공간과 이를 통한 각 개인의 시민권 보장을 약속하는, 매우 모순에 찬 의식. 왜 모순인가? 민족의 일원보다는 시민의 일원이라는 자격증이 현실의 복지와 안녕을 보장할 것이라는 일종의 교환조건이지만, 실상 시민의 존립근거는 역사적으로 민족적인 자결 없이는 그 존재자체가 불가능. 여하튼 근대의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좀더 강력하고 빈틈없는 정치권력을 제공하는 사회형식을 실험하는 무대로서, 미국은 세계각지에서 식민주의와 경제적 궁핍만을 겪게 하는 소수 민족단위 삶의 유효성을 폐기하고 싶은 노동인구와 지식인들의 새로운 거처가 됨.

* 근대화과정을 온전히 밟을 수 없었던 식민현실이 한국 특유의 해외이주 상황을 낳았음. 해외이주의 양상에서도 각 개인이 처한 계층적 조건들에 따라 집단이 분류되기도 하는데, 기층민들은 대개 만주나 일본 땅으로 숨어들었고 머나먼 미국 땅으로는 당장의 일제의 서슬과 굶주림을 피하기 위한 노동력 이동 혹은 그곳에서는 근대화의 과실을 맛보는 것이 좀더 예측가능하다고 여긴 중상류 지식인의 가족이민이거나 하였다. 그 상황은 미국에 새롭게 정착한 작가세대들이 아예 민족에 대한 질문을 함구하거나 결국 지구촌의 모든 차이와 집단간 갈등과 모순에도 불구하고 우린 결국 한겨레인 것이며 따라서 실제적 현안은 지금 여기서 어느 선까지 정치적, 물리적 권능을 확보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로 안착되는 현실을 낳음. 결국 시민의식에서 대단히 비대해진 개인, 그러나 실상 엄밀한 인종적, 민족적 서열화 속에서 그 의식의 물리적 기반은 상당부분 유실당한 개인을 재현하는 결과. 아시아계 미국작가들이 고국 땅과 문화에 대한 집단기억을 소환하는 일, 고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대화과정과 그것이 남기는 상흔들을 탐색하는 일을 함으로써 미국의 언어와 의식으로 소수민족의 미미한 존재감에 빛을 쬐고 물을 주어 근대시민의 정치적 권능을 부여하려는 시도. 또는 일제이후 급격히 단절되고 분리되어버린, 사실 병행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도 대척점에 놓이게 된 근대시민의 완성과 민족자결의 양대 과제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2. 현 단계는 인종

* 과거의 형틀은 헐거워지는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현실의 서열과 그에 따른 힘의 분배는 더욱 빈틈없어지고 물샐틈없는 형성력을 지닌다. 구시대적인 형틀로 간주되는 민족단위는 그것이 진정 구시대의 쓸모없는 유물이어서가 아니라, 특정계층에게 무용지물 더 나아가 장애물이 되었기 때문. 그 특정 계층은 바로 근대시민으로서 개인의 모습이 어느 선까지 그려져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계층이고, 그들은 근대화된 공적 공간 속에서 모든 구성원들의 결정이 비평과 경신의 순환과정을 밟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제시하면서도 민족단위의 각성과 결속이 유익하지도 않고 얻는 게 없다는 의식을 선전하고 있음. 이들이 폐지하고자 했던 민족주의는 자유무역(실제로는 전혀 자유롭지 않은)을 지향하는 시장경제 측에서는 세계자본 앞에서 민족자결을 관세처럼 내붙이는 행위, 만국 노동자 단결을 외쳤던 분배위주 계획경제 측에서는 효율적인 중앙집권에 저해되는 소수민족들의 각종 방언과 문화 따위에 불과한 어떤 것이었음. 힘의 분배와 형성에서 제외되거나 제한적 권능만을 부여받는 입장에서는 그럴수록 민족단위의 각성과 언어적 권능부여 작업이 유효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음.
(인종에 따른 힘의 분배 혹은 더 넓게 남녀간 성차모순에 따른 서열화 등을 좀더 부정적으로 나아간 ‘근대화’ 양상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입장에서는 지구화시대에 임하여 마치 폐기처분해야 할 것 같은 미시적 구분으로서의 민족주의의 쓰임을 되짚어 넉넉한 논의와 비평의 시간을 두고 시민권 부여작업 속에 본래 내재되어 있던 작동원리로서, 근대화의 부정적 전개를 버티어 막거나 변화시키는 힘으로 활용해야)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은 민족단위의 삶을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여기고 다민족사회의 삶을 정치적으로 결정한 입장. 그러나 그 다민족사회인 미국에서 그들에게는 과거의 민족개념을 대체할 새로운 권능의 형틀이 다시금 들씌워지는바, 그것이 바로 인종이다. 겉모습을 달리할 뿐 이 둘은 그 작동하는 힘과 지향하는 바가 닮은꼴이다. 공적 공간이 제조한 자기 권능부여의 여러 힘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최대한의 근대화를 개인 삶에서 완성하는 것. 다민족사회인 미국에서 기왕의 민족단위보다 좀더 포괄적이고 좀더 태생적인 인종이라는 기준으로 힘의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 힘은 결국 사회적 부의 파이를 누구 쪽으로 할당하는가를 결정짓는 것. 이에 대한 이의제기, 인종에 의한 교묘하고도 복잡한 힘의 분배전략을 공적 담론의 장에서 질문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그 문학성에서도 진지한 비평의 고려대상이 됨.

* 한국계냐 중국계냐 일본계냐 라는 문제는 이제 미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과거 선조들의 땅에서 어떠한 문화적 양분을 발굴하고 어떠한 민족적 유대감을 상상하든 그들의 문학적 발언은 권능부여의 실권자인 코카서스 백인이 보이는 반응과 이들이 내리는 결정을 지극히 의식할 수밖에 없음. 작가의 상상력은 작품 속 인물들의 선택과 결정을 통해 그들이 정치적 권능부여를 어느 정도까지 해낼 수 있는가라는 탐색을 하고 있으며, 특정집단으로의 진입 혹은 문전박대가 가장 치열한 체험으로 묘사되는 점도 이들이 이름하여 ‘인종모순’을 삶의 최대현안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줌. 그러한 현실인식은 그 자체로만 공론화되고 해소될 성질이 아님. 포괄적인 인종적 틀로 힘의 분배를 조정하며 너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네 한 몸일 뿐 그 어떤 구시대의 네트워크는 필요치 않다고 제언하는 다인종사회라면 오히려 각 지역출신의 개인이 본래지역의 유형무형의 유산과 그에 깃든 민족의식에 제휴하는 길만이 이들이 누대에 걸쳐 지향해온 근대시민의 실현에서 벗어나지 않는 길.

* 작가들이 조상들의 땅에서 채취한 삶의 활력을 작품화하는 방식(고유의 전설과 민담에 깃든 언어적 활력을 작품에 들여오는 방식이거나, 선대의 고국 땅의 현재와 미국의 삶의 현실에 공히 파고든 권능박탈의 체험을 통합적 비전으로 내놓는 방식 등)으로 민족적 유대의식을 갖추어 미국사회의 인종적 힘의 분배에 제동을 걸고, 근대시민으로서의 정당한 본인의 몫을 문학적으로 발언하고 주창할 때, 두 가지가 고려되어야 함.

① The meritocratic system is politically one of the least stable systems. And it is precisely because of this political fragility that racism and sexism enter the picture.(Immanuel Wallerstein, "The Ideological Tensions of Capitalism: Universalism versus Racism and Sexism," Race, Nation, Class: Ambiguous Identities. 32)
개인의 실력과 공로를 최우선으로 대접하는 사회는 겉보기에는 구체제의 비인도적인 관계망에서 벗어나 근대시민의 완성을 보장하는 사회형식이지만, 그 개인의 실력과 공로에는 필히 대물림된 유형무형의 자원 또한 포함되어 있는 것. 따라서 유난히 ‘개인의 실력’에 방점을 찍는 사고는 그 행간에 수직수평의 대물림과 나눔, 개인간 집단간 연대가 발휘해온 권능부여의 힘에 대한 엄중한 인식과 거부감, 혹은 강한 거부감만큼이나 그 힘에 맹종하려는 충동이 나란히 도사리고 있는 것. 비록 떠나온 땅이고 그 언어와 의식에 친연성이 대부분 소실되었다 해도 대대로 살아낸 땅과 유대감을 갖고 그 땅의 활력을 자신의 실력과 공로의 자원으로 인정할 경우, 낡은 구시대의 유물로서의 민족의식이 아니라 현재성을 지니고 근대시민의 이상과 오늘날의 미국땅의 삶을 연계시켜주는 민족의식으로 움트지 않겠는가.

② 남녀의 성차모순에 대한 문학적 공론화는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역사가 오래된 모순을 다루는 것이며, 또 그만큼 개인 삶과 인간관계에 가해지는 자본의 해체작업, 근대시민의 완성을 뒤틀어버리는 힘에서 가장 뿌리 깊은 과격성을 띠게 되는 민감한 주제.
한국계 미국인 작가들의 남녀관계에 대한 문학적 재현에서 지배인종에 속한 상대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미국사회 내 위상을 정치(定置)해내려는 충동이 다소 비중이 높은 편. 이 또한 자신에게 권능을 부여하고자 여러 정치적 삶의 결단들을 내려온 습성이 투과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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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석
200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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