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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김일구 선생님 발제

작성자

김애주

작성일자

2002-06-05

이메일

ajkim@dongguk.edu

조회

13389


3월 김일구 선생님이 발제하신 "일본계문학"입니다.



3. 일본계 미국문학
스탠 요기


1949년의 논설에서 2세대 일본계 신문기자인 래리 타지리는 "비록 2세대의 글들은 이러 저러한 형태로 거의 사반세기에 걸쳐 일본계 자신의 신문과 잡지에 출판되어 왔지만, 일본계 미국인들은 여전히 그들 자신만의 문학을 개발해내야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논평이후, 같은 사설에서 타지리는 2차대전이전의 2세대 일본계의 힘찬 문학적 삶을 연대기화 함으로써 자신의 평가를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
이차대전 직후 많은 미국 본토의 일본계 미국인들은 구금의 외상이후의 자신들의 삶을 앞 다투어 재건하려 하였다. 전쟁전의 문학을 직업으로 진지하게 고려해 왔던 일본계 미국인들은 이제 자신들이 기본적인 경제적 필요성과 여전히 일본적인 것이라면 적의는 아니더라도 의심스럽게 여기는 사회와 당면하고 있다.
타지리의 이러한 언급은 다행히도 일본계 미국문학에 대한 최후의 종언은 아니다. 일본계 미국인 작가들은 3대에 걸쳐 일본계 미국인들의 경험과 시각을 탐구하고 기록한 시, 단편소설, 장편소설, 회고록, 그리고 희곡들을 써왔고 지금도 쓰고 있다. 광의적으로 일본계 미국문학의 요체는 개인적이고, 집단적이며,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세대적인 다양한 층위에서의 정체성의 현재도 진행 중인 구축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여러 역사적 간행물을 통해, 일본계 미국인 작가들은 그들 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해결해 내려고 노력해왔고, 그 과정에서 인종성과 국민성의 영역을 검토해왔으며, 종종 더욱 복잡해지고 때로는 적대적인 일본계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에 도달하게 된다.
세대적 정체성은 북남 미에 사는 일본계 조상을 둔 사람을 일컫는 말인 "일본계(nikei)"에게 있어서 중요하다. 일본계 미국인들은 각 세대간의 구분된 용어를 발전시켜왔다. "1세(issei)"는 1885년과 1924년 사이 하와이와 미국 본토에 도달한 이민자들을 말하며, "2세(nisei)"란 제 2세대 일본계 미국인을, 그리고 "3세(sansei)"란 제 3세대를 지칭한다.
미국내 중국계 노동자의 이민을 금지한 1882년의 중국인 배제법안의 시행이후, 그리고 타국이주를 제한하는 일본 국내의 포고령이 폐지된 이후에, 젊은 남성 노동자들은 1885년 하와이와 미국 서부지역에 이주를 시작하였다. 처음엔 농업, 광업, 그리고 철도 일에 종사했던 거의 남성위주의 미국거주 일본인들은 초기 20세기에 가족을 발달시킨 유일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었다. 미국의 연방법은 중국과 필리핀 여성의 이민을 금지했지만, 일본계 여성들은 미국입국이 허용되어졌다. 이 때문에, 견실한 일본계 미국인 공동체가 2차대전 이전에 하와이, 캘리포니아, 오레곤, 그리고 워싱톤에 형성되었다.
일본계의 토지소유를 금지하는 외국인 토지법이라든가 1921년의 일본계 미국인의 귀화권을 부정한 오자와 대 미국의 소송과 같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요소는 1세대 일본인의 세대정체성에 대한 감정형성에 일조하였다. 포로수용소에 11만이 넘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2차대전중에 구금한 것은 1세대에 영향을 미쳤지만, 1910년과 1940년 사이에 태어나 전쟁 중에 사춘기나 성년초기였던 2세대에게도 깊은 충격을 남겼다. 자신의 부모의 일본적인 가치와 그들 동료의 미국적 사고에 동시에 영향을 받은 2세대들은 두 문화 사이에서 타협을 하였지만, 궁극적으로 자신들을 미국인으로 여겼었다. 결과적으로, 다수의 구금은 2세들에게 인종관계와 국적의 정의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불러 일으켰다.
비록 대다수의 3세대 일본인은 구금시기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구금 사건은 주로 2세와 3세들이 전쟁시기의 복잡성과 외상에 대해 유지해왔던 침묵을 통해 3세대에게 심리적으로 각인되었다. 많은 3세 일본계는 또한 1960년대와 70년대의 다양한 사회적 운동에 의해 영향받았고, 그들 부모의 역사를 회복하고 자의식적인 일본계 미국인들의 문화를 형성하려 하였다. 비록 2세와 3세보다 더 이종적이긴 했지만, 3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계 미국인의 문화를 유지하고 형태를 바꾸고 있다.

1세대의 영어로 글쓰기

영어로 씌어진 일본계 미국문학은 주로 2세대와 3세대 작가들에 의해 주로 씌어졌다. 비록 대부분의 1세대 일본계는 교육수준은 높았지만, 그들의 일상생활의 요구는 글 쓸 시간을 커녕 그들에게 영어를 배울 시간도 거의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1세대들은 시(하이쿠, 단가, 센류), 그리고 다른 문학작품들을 창작했고, 그 중 많은 작품들을 하와이와 서부해안의 주요 도시의 일본어 신문에 발표되었다.
영어로 글을 썼던 얼마 안 되는 일본인 2세들은 개성적이어서, 대개가 농장일꾼이거나 하와이의 소규모 사업주이거나 서부 해안지대의 농부, 자영업자, 하인들이었던 대다수의 관심사를 반영하지 않았다. 영어로 글을 썼던 초기의 일본계 미국인 작가들중 가장 화려한 인물은 칼 사다키치 하트만이다. 독일계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트만은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를 이루는 시대에 예술가, 예술 비평가, 작가 그리고 미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유럽계 아방가르드의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물론 일본계 예술과 문학을 미국의 청중들에게 소개했다. 케네스 렉스로드에 의하면, 하트만은 영어로 하이쿠를 쓴 첫 번째 작가였다(하트만 1971, ix). 세기말 그리니치 빌리지의 문화적인 환경에서 유명 인물인 하트만은 의식적으로 "보헤미아의 왕"으로서의 정체성을 배양하여 동시대의 예술가들과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서의 생애에 관한 4편의 소설을 쓴 작가인 에추 스기모토는 그녀의 자전적 소설인 『사무라이의 딸』(1925)을 출판하면서 미국인 대중의 관심을 처음 끌었다. 일본의 귀족계급에서 성장한 스기모토는 영어와 서구문화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그녀자신을 일본과 미국사이의 문화대사로 여겼는데, 이는 전쟁전 많은 일본계 2세들이 맡았던 역할이었다. 그녀의 소설은 스기모토가 일본의 급속한 현대화 때문에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았던 일본 문화와 관습에 대한 낭만적인 견해를 보여준다. 스기모토의 소설은 그녀가 선택한 미국인 동포들에게 일본인의 방식을 설명해줄수 있는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보헤미안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창조하기에 바빴던 하트만이나 그녀 자신을 국가간의 귀족적 가교로서 보았던 스기모토와 다르게, 시인 부니치 카가와는 일본계 미국인의 정체성과 씨름을 했다. 영어로 글을 쓴 모든 2세 작가들중에서 카가와는 일본계 미국인 공동체와 가장 긴밀한 유대를 유지하면서 일본계 신문에 게재되었던 시들을 써왔다.
1920년대에 그는 이민을 하여 캘리포니아 북부의 로스 알토스지역의 아버지와 합류하였는데, 그곳에서 그는 시인이자 스탠포드대학 교수인 이보르 윈터즈와 그의 아내인 작가 자넷 루이스와 친구가 되었다. 카가와가 정체성 문제에 흥미를 가졌다는 것은 그의 1930년 시집인 『숨겨진 불꽃』에서 분명해 진다. 책제목으로도 등장한 시는 가혹한 고립감과 자기반영을 전달하고 있는데 이는 이 책의 많은 다른 시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전쟁중에 카가와는 튤호수 캠프에 흥미를 느꼈는데, 이 장소는 그가 『테사쿠』라는 제목의 일본어 문학잡지의 출간에 간여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전쟁전에 카가와는 일본계 2세 작가들과 관계를 맺어왔는데 단기간에 그는 일본계 2세대 지식인중 가장 활력있는 그룹중의 다산의 젊은 작가들중 하나인 치이예 모리와 결혼하였다.

정체성의 확립: 전쟁 이전 일본계 2세들의 글쓰기

1920년대 후기에 시작하여, 많은 2세대 일본계들은 서부해안의 일본계 미국인 신문에서 영어 섹션을 위한 시와 단편소설들을 쓰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신문인 『뉴월드선』의 1929년에 영어 편집자인 이와오 카와카미는 "젊은 일본인들을 생각하면서"라는 영문 섹션을 시작하면서 2세대 일본계에게 창조적인 글쓰기에 종사라는 몇 차례의 탄원을 하였다. 『뉴월드선』에 그의 작품이 종종 출판된 시인 카와카미는 문학과 문화에 흥미를 가지고 시대의 문화적 사건을 빈번히 탐구하는 사설을 썼다. 예를 들어, 그의 초기 사설에서 그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높이 평가하며 검열에 반대하는 책을 옹호했다. 2세대 일본계의 삶의 개성을 의식하면서, 카와카미는 소설과 에세이 콘테스트를 도입하여 2세대의 문학적 재능을 싹틔우는 것을 고무하였다.
초기의 2세대 일본계 작가들중의 또 다른 영향력있는 작가는 신문기자였던 래리 타지리였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태어나 타지리는 로스 엔젤레스 신문 『카슈 마이니치』의 부편집장이 되었다. 1932년에 그는 주간 문예 칼럼을 소개하면서 그의 재직당시 『카슈 마이니치』는 일본계 문학의 선도적인 출판사가 되었다. 전쟁의 발발 전까지 『뉴월드선』,『카슈 마이니치』와 다른 공동체 신문들은 계속해서 2세대 작가들의 점차 복잡해져가는 그룹들의 작품을 출간했다.
이러한 신문들에 등장한 작품의 예는 젊은 2세대 일본계에 미친 문화와 문학의 영향을 드러낸다. 예컨대, 1932년에 『카슈 마이니치』는 저명한 일본 문학의 번역을 본래 일본어로 된 텍스트와 함께 출판하기 시작했다. 이 시리즈에 대해 언급했던 사설은 이러한 작품들이 일본어 학교를 다니는 2세대 일본계에 도움이 될 것이며, "2세대 작가의 궁극적인 활동은 미국내에서 이루어지며, 일본어 학교의 임무는 일본의 문화를 동화시키고 미국내 그 이해를 전파하는 것을 훈련하는 것을 개발하는 것이다"(1932년 5월 8일, 로스엔젤레스)라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의 포함은 2세대가 미국과 일본 사이의 문화적 가교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은 일본이 점차 아시아에서 공세적이 되고 미국과 일본간의 긴장이 점화되었을 때 2세대를 어려운 입장으로 이끄는 정치적 차원이 되어졌다.
비록 몇몇 2세대들은 자신을 일본문화에서 동료시민들을 가르치는 견지를 취하기도 했으나, 공동체 신문에 젊은 2세대 작가들에 의해 씌어진 작품들은 문화적 대화가 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토요 수에모토의 "선견지명이 없는"과 같은 시는 서구 문학전통의 영향을 반영하였다:

별없는 시간에 비틀거리며 길을 내려오다
밤속에 불어오는 안개와 두려움에 길을 잃었다.
나는 달빛이 보여주는 이상한 충동으로부터 도망쳤다.
짧고 하얀 차분함. 나는 그림자가 끔직한 형태로 애쓰는
가까운 친숙함이 두려웠다.
자랑스런 절망감을 갖고 나는 갔고
탈주하기를 포기했다.

내 스스로 잘못됐고 선견지명이 없었다는 걸 갑작스레 알기 까지.
사라진 아름다움의 꿈이 외로운 마음에
출몰하고, 어둠속에서 삶은 황량하게 소진되고
그리고 이러한 경멸을 통해
나는 내가 한 때 익혔던 방식대로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단지 피폐한 꿈만 남고, 단지 차가운 바람이 반쯤
동정적으로 조롱한다: 바보! 불쌍한 바보!
(c. 1935, 6)

영어 소넷의 엄격한 리듬 패턴과 운율격을 따르면서, 수에모토는 이 시에서
특별히 일본계 미국인적인 주제나 이미저리의 어떠한 것도 허용하고 있지 않다.
2세들이 쓴 다른 작품들은--고도로 형식적인 운문, 기상적인 연애시, 살인 미스터리, 주인공들이 그 일본식 이름을 제외하고는 다른 미국인과 구별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시기의 유행했던 문학적 형태를 반영할 뿐 아니라 그러한 전통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려는 2세들의 바램이 반영한다.
1930년과 1940대 초기의 2세들의 문학은 또한 국제적 긴장, 국내의 인종관계,
뚜렷한 인종그룹으로의 자각에 관한 점증하는 관심을 드러낸다. 치예 모리의
1932년의 시 "일본계 미국인"은 사적 정체감과 국제 정치간의 교차점을 노골적으로 탐색하는 첫 번째 2세들의 작품들중 하나이다. 모리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미국인과 비교하여, "클레이 사격의 접시 모양을 한 목표물 들이 재빠르게 목적없이 가로지르며/ 국제적 반목의 전선위로/ 정치적 불협화음의 사격 연습장의 무력한 타켓들은/ 타닥거리는 포탄에 뚫려/ 양쪽으로 찢겨 우리 쪽으로 향한다(1932, 2). 그녀는 명확한 용어로 2세의 좌절과 정치적으로 불확실한 입장을 펼쳐내었다. 미국과 일본 양쪽의 정치적 비평은 이 젊은 2세 일본인로서는 대담한 것이었다. 다른 2세 작가들은 정치, 특히 미국내의 문화간 관련에 대해, 그리고 2세와 다른 미국인 인종그룹간의 가교를 건설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이러한 2세 들의 그룹중의 주도적인 인물은 메리 오야마였는데, 그녀는 다양한 형태로 서부해안에 걸쳐져 있는 일본계 미국인 신문들을 위해 글을 썼다. 오야마는 2세 정체성을 2세대 일본계 미국인으로 단련시킨 2세대의 강력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다른 소수민족계 미국인들을 모델로 보면서, 다양한 미국인 인종이 이야기속에 목소리를 내는 일에 관심을 갖았던 윌리엄 사로얀이나 루이스 애덤스와 같은 시대의 유명작가들과 서신을 교환하였다. 오야마는 2세 예술가와 작가들의 연맹의 공동 창립자였는데, 이 그룹은 미국인 작가 연맹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2세 그룹은 "문학적 예술적 노력에 헌신하며...개인과 협동적 창작 활동을 진흥하며, 삶의 문제, 예술과 사회의 광범위한 문제에 비판적 안목을 자극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되었다"(1939, n.p). 타로 카타야마의 단편 소설 "하루"는 정치적이라기 보다는 문화적 긴장에서 생기는 내적 갈등을 탐색한다. 아마도 전쟁전의 단편 소설중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복잡한 구성을 갖춘 소설인 "하루"는 중매결혼에 동의한 한 젊은 2세의 감정적 동요를 기록한다. 대부분의 전쟁전 2세 소설이 청소년에 의해 씌어졌고, 다소
발달이 미흡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하루"는 그 심리적 통찰과 스타일과 플롯의
총제에 있어서 특출하다. 이야기의 처음 두 문장은 전체 이야기의 기본적 전제를
조망케 한다: 그녀 세계의 현실은 그녀가 누구였는지의 요지부동의 사실에 의해
강요되는 그런 현실이었다. 하루는 미국 서부의 가난한 일본인 농부의 딸이었고
그녀의 전 존재의 시작과 그럴법한 끝은 그러한 상황내에 존재하였다 (1933, 7).
카타야마는 어떻게 경제적, 문화적, 심리적 요소들이 주인공 하루를 그녀가
메스껍다고 느끼는 남자와 결혼하게끔 강요하는 지를 보여준다. 중매결혼에
비롯된 1세와 2세 사이의 긴장은 다른 단편소설들의 주제가 되었지만 카타야마의 감각적인 이 주제의 처리는 다른 2세 소설들중 어느 것보다 훨씬 앞서 나아가고 있다.
"하루"는 전쟁전 2세들에 의해 시작된 몇몇 문학잡지들중의 하나인 『레이메이(여명)』에 처음 모습을 보였다. 1931년 같은 이름의 솔트 레이크의 2세 문학인 클럽에서 시작되어 『레이메이』는 당시 많은 신문의 지면에 작품을 발표하였고, 『승천(1968)』과 『마을 모습/마을 소떼(1986』라는 두건의 시집을 출판한 다산의 젊의 작가 야스오 사사키가 편집하던 잡지였다. 『풀잎』은 젊은 2세 작가들을 위해 문학 살롱을 주관한 메리 오야마가 이끄는 로스 엔젤레스의 작가그룹에 의해 등사기로 검소하게 인쇄된 팸플릿이었다. 『교쇼: 2세 문학잡지』는 대략 1935년 경 아이오와주의 마운트 버논의 코넬 대학 영어클럽에 의해 출판되었는데, 2세를 위한 문화 가교역할을 거듭 주장하였다. 그 잡지의 유일한 안건에 대한 서문은 "2세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 사이의 간격을 이어주는 간극의 문학그룹"(5)이라고 천명하였다. 『현재생활』이라는 또 다른 2세 문학잡지는 2세 작가들에 대한 많은 관심을 특집화 하여 1940년 10월판에서 24명의 주요 `2세 작가들을 비공식적으로 목록화한 "2세문학세계 인명록"을 포함시키기도 하였다.
아마도 전쟁전 청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일본계 미국 작가는 일본계 지식계급의 영향권 밖에서 성장한 토시오 모리였다. 1930년대, 모리의 소설은 New Directions in Poetry and Prose, The Clipper, Common Ground와 같은 잡지에
등장하였는데 이러한 잡지는 거루트루드 스타인, 랭스턴 휴즈, 윌리엄 사로얀등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 역시 출판하기도 하였다. 모리의 『요코하마, 캘리포니아』라는 제목의 단편소설 선집은 1942년 출판이 예정되었다. 그러나 전쟁은 책의 발간을 지연시켰고 1949년에 가서야 비로소 출판되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과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모델로 하여 『요코하마, 캘리포니아』는 1930년대 후반 샌프란시스코의 만을 가로지르는 곳에 위치한 가공의 도시의 일본계 미국인 거주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리는 일견 세속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며 일상생활에서의 심층적인 면을 드러낸다. 비록 그의 이야기에는 구성상의 줄거리가 많이 발생하진 않으나,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반향은 풍부하다. 예를 들어, "내일과 오늘"은 별로 예쁘지 않고, 미모의 여동생에 의해 빛이 가려지는 일본계 2세 여주인공 하쯔에의 일상적 존재를 다룬다. 하쯔에는 가계를 꾸려가며 그리고 클라크 게이블에 순진하게 매혹되어 그녀의 운명에 만족하나, 그 만족도 그녀의 여동생이 논쟁에 열이 붙어 "너는 보기에 추해, 하쯔에! 너무 못나서 어떤 남자도 너를 보려하지 않을걸"(1949, 164)이라고 하는 말을 발설하기 전까지 일 뿐이다. 이러한 발설은 하쯔에에게 상처를 주나 그녀는 완화된 상태의 희망을 "그녀는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에 비해 그렇게 못나지는 않을 정도로 희망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자신을 추스른다(모리 1949, 164). 이야기의 마지막 문단중의 하나는 『요코하마, 캘리포니아』의 저변에 깔린 메시지와 전체적인 색조를 잘 포착한다: "잠시 이웃을 돌아보면 틀에 박힌 과정이 익숙하고 강조되는 법도 없다. 따분하고 무미건조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관례속에 비록 그 결과와 전망이 명명백백하다고 해도, 숨을 멈추게 하는 생생하고 거대한 서스펜스가 존재한다. 비록 [하쯔에의] 희망이 이루어지지 못한 다해도, 그녀가 클라크 게이블의 연인이 되지못할 이유는 없다(1949, 165-6). 이러한 문단은 일상생활의 가장 사소한 사건일지라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모리식의 이해를 강조한다. 비록 "내일과 오늘"이 심약한 감상주의로 퇴보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모리는 가장 자기기만적인 인물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에 위엄과 존경을 부여한다.
『요코하마, 캘리포니아』에서 모든 등장인물은 일본계 미국인들이고 서술의
목소리는 친숙한 공동체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고 말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풍부한 감정의 암맥으로 연결되어 1930년대 후반의 미국 대중문화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모리는 일본계 미국인을 위한 새로운 문학적 기반을 주장한다. 그의 글쓰기는 2세들을 이국적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더 넓은 사회적 문맥속에 위치시킨다.
모리는 또한 일본계 미국인의 뚜렷한 성격을 묘사한다. 예를 들어, 1세들을
다룬 이야기는 일본의 전통을 거슬러 언급한다. 그러나 더욱 미묘하게, 모리는
일본계 미국인들의 규준과 문화적 표현을 기록한다. 이러한 감각은 아마도 "근사한 도넛을 만드는 여인"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이 작품은 한 일본인 2세 여인의 초상으로 본래 선집의 서두를 장식했을 작품이다. 비록 그녀는 여섯 아이를 낳아 40년을 일하나, 주요직의 인물은 그녀를 돌보기 위해 다른 사람에 의존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녀가 다른 사람을 돌보며 그녀의 놀라운 도넛을 화자를 위해 구우며 그녀의 가족과 공동체를 보살핀다. 근사한 도넛을 굽는 여인은 일본계 미국인사이에서 서로에 공통으로 걸쳐 있는 가치인 공감과 의무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가치는 기리(빚)와 온(의무), 그리고 엔료(염려, 속박)과 같은 여러 문화적 현상속에서 보이며 그것은 공감과 상호의 존속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요코하마, 캘리포니아』의 1949년판에 덧붙여진 2개의 이야기는 전쟁과 그
전쟁이 일본계 미국인에 미친 효과를 다룬다. 두 소설 모두 1세 일본계들을 등장시켜 미국에 대해 억지로 호의스럽게 말하게 한다. 예를 들어, "눈초리가 올라간 미국인"에서는, 한 1세 일본계 여인이 2세 남자에게 "미국이 옳아. 미국은 실패할 수가 없어. 미국의 원칙은 시간과 전제 군주의 시련을 견디어 낼거야"라고 말한다(1949, 132). 비록 몇몇 1세들은 전쟁중 전적으로 미국을 지지했지만, 다른 이들은 입장이 분명치 않았다. 2세에 의해 포로수용소에서 쓰인 작품들은 정체성의 모호함을 탐구한다.

의문시되는 정체성: 구금의 문학

전쟁과 연이은 구금은 서부해안을 따라 살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들의 삶을
심각하게 변화시켰다. 『요코하마, 캘리포니아』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공동체는
산산 조각이 나버렸고, 정체성과 충실함은 의문시 되어졌다. 재판이나 청문없이
11만이 넘는 2세의 대대적인 구금은 일본계 미국인들 특히 2세들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몇몇 2세들에게, 이는 철저하게 "미국인" 정체성을 맹렬히
포옹하려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이는 미국의 평등과 정의의 텅 빈
그럴싸한 말뿐인 약속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쓴 환멸로 이어졌다. 다른 일본계
미국인들은 그들 집에서 강제로 축출당해 미국 전역에 산재한 황량한 캠프에
구금당한 외상에 대처하기 위해 시도하면서, 이 두 극단속의 중간쯤에 해당되었다. 이러한 투쟁은 포로수용소 문학속에 반영되었다. 세 개의 수용소가 영어로 된 잡지를 출간하였다: Tulean Dispatch (튤레이크, 캘리포니아), The Pen(로어,
아칸사스), Trek(토파즈, 유타), 이 들 3개중 Trek은 가장 폭넓은 재능과 관점의
대형을 갖추었다. 본래 신예 작가이면서 버클리 학생이었던 짐 야마다와 Citizen
136000 (오쿠보 1946)라는 삽화가 담긴 회고록을 후에 썼던 예술가에 의해 편집된 Trek은 세 번 출판되었다. (수용소에서의 네 번째 판은 All Abroad라는 제목으로 토시오 모리에 의해 편집되었다.) 각호는 수용소 생활의 상태에 대한 주요
기사로 시작하여 다음엔 단편소설, 시, 토파즈 지역에 대한 지리와 역사 그리고
"아라모드"라는 제목의 여성 칼럼이 있었다. 비록 단 3회의 출간이 이루어졌지만, 각권마다 "낙관적"인 견해와 "비판적"견해사이의 긴장을 반영한다. "낙관적" 글들은 너무 신랄해지지 말고 미국을 믿자는 훈계의 특징이 있었다. 이러한 그룹의 지도적 작가는 토시오 모리이다. 모리가 Trek의 창간호를 위해 쓴 스케치인 "토파즈, 역"에서 화자는 일본계 미국인들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 더 나은 미국을 위해 좋은 미국인으로 진보하는 도상에 잠깐 내리는 역"인 토파즈에 구금되어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리는 일본계 미국인 시민 연맹(JACL)의 "더 큰 미국에서 더 나은 미국인을"이라는 모토를 다시 외친다. 모리의 암시는 JACL주변에서 발달된 복잡하고 혹독한 긴장을 전제로 할 때 낙관적 진술이기도 하고 정치적인 진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JACL은 동료 일본계 미국인들을 배반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기회주의적 조직으로서 낙인찍히었다. 어떤 캠프에서는 JACL 대변인은 매 맞고 위협받았다. 수용소의 출판이 정부 당국자에 의해 검열 받게 되어졌기 때문에 구금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은 드물었다. 결과적으로, 작가들은 그들의 비판에 가면을 씌워야만 했다. 수잔 슈바이크는 토요 수에모토의 전쟁시를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시의 형태와 어휘속에 점철된 저항과 비판"의 예라는 매혹적인 비평을 하고 있다(슈바이크 1991, 186). 수에모토는 가장 다작의 재능있는 전쟁전 시기의 2세 작가들중의 하나로 Trek의 토시오 모리의 단편과 동일한 출판본에 발간된 그녀의 시는 자연에 대한 순진한 언급인 것처럼 보여 쉽게 수용소 검열관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이득"은 그러한 한 예이다:

나는 불모의 대지에 씨를 심으려 한다.
그리고 야성의 미가 단단히 뿌리를 내리게 하려 한다.
그러나 그 오랜 기다림이
내부적으로 나를 뒤흔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내가 감히 그러한 미숙한 식목으로부터
무엇이 이득인 지를 감히 말하지
못할 때 까지.
그렇다면 어떤 꽃이 고통의 가치가 있으리오.
(1942, 7)

시가 게재된 문맥을 가정하면, 수에 모토의 자연 이미저리는 강력한 상징적 중요성을 띤다. "불모의 대지"는 유타 주 토파즈의 사막으로 해석될 뿐 아니라 1942년 철조망이 둘러쳐진 담장 뒤로부터 일본인 2세가 응시하는 것은 미국사회라는 사막으로 여겨질 수 있다. 뿌리를 내리려는 "야생의 미"에 대한 오랜 기다림은 미국인 사회내부와 수용소 구획 내에서 일본계 미국인의 승인을 가리킬 수 있다. 확장된 상징으로 읽히면 이 시는 구금이 이미 일본계 미국인에게 해를 입힌 비용에 대한 표현일 수 있다.

유동적 정체: 전후 2세 문학

1968년 존경받는 2세 작가인 히사에 야마모토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한 작가는 비전을 전달하려는 강박에서 시작하고 자신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에 대해 개의할 여유도 없다. 그러나 우리 2세들은 신중하고 사려심 깊으며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신경쓴다. 그리고 자신의 내적 비전을 외양과 타협하려는 노력에서 버림받은 작가들이 몇 있다(야마모토, 1976, 126-7). 야마모토의 관찰은 많은 미국 본토거주의 2세들의 전후 심리상태를 성문화한 것이다. 강한 인종차별과 적대감의 타깃이 되고 난 이후 많은 2세 들은 섞여 눈에 띠지 않으려는데 열심이었다. 자신의 삶을 재건시키는 노력에서 구금의 외상을 잊기 위해 많은 이들이 미국의 주류에 흡수되기를 시도했고, 어떤 경우는 2세의 공동체와 유산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2세들은 계속하여 글을 썼다. 로스앤젤레스의 Rafu Shimpo, 샌프란시스코의 Hokubei Mainichi, JACL(일본계 미국인 시민연맹)의 전국지 Pacific Citizen과 같은 일본계 미국인 신문의 크리스마스/ 새해판 잡지는 2세 작가들을 위한 칼럼을 남겨놓았다. 순진했던 전쟁전의 시기만큼 다작은 아니었지만, 2세작가들은 이러한 신문을 위해 그을 쓰기도 했고 비록 1930년대 가졌던 것과 같은 풍미와 야심은 아니었지만, Scene, Bandwagon과 같은 2세 잡지에도 기고하였다.
그러나 소수의 2세 작가들은 전쟁 직후와 1950년대를 통해 주목할 만한 작품을 산출하였다. 아마 하와이의 일본인들이 대부분 구금의 외상을 경험하지 않고 하와이 섬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하와이거주 2세들이 전쟁직후 일본계 미국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탐구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1950년대와 60대 하와이의 2세들에 의해 쓰인 3권의 소설은 1세의 역사와 인종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셀리 오타의 『그들의 어깨위로』 (1951), 마거릿 하라다의 『태양은 이민자에게 비친다』(1960), 카즈오 미야모토의 『하와이; 무지개의 끝』(1964).
스티븐 수미다는 각각의 소설이 역사에 대해 다른 태도를 증명하고 설명한다. 『그들의 어깨위로』는 2세 이민자인 타로 수미다와 일본과 하와이 양쪽에 있는 가족의 재판에 초점을 맞추어 그가 역사를 다루는 "업보적 태도"라고 부르는 것을 채택한다. 일본계 미국인의 동화시기에 글을 쓰면서, 오타는 일본계가 새로운 현시속에 되풀이되어지게끔 되어있는 자신들의 역사에서 탈피못하고 있음을 암시한다(수미다 1991, 207-14).
그러나 『태양은 이민자에게 비친다』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소설의 주인공 요시오 모리는 빈곤한 이민자에서 안락한 사업가로 기업의 사다리를 오른다. 소설은 모리의 더 넓은 일본계 미국인 공동체와 모리의 상승을 연관지우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이상하게도 마로 이차대전 이전 시기로 끝맺음을 하면서, 전후세대 독자에게 환멸의 감정을 남기면서 소설의 끝을 따라는 역사를 파악한다.
미야모토의 『하와이; 무지개의 끝』은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부분적으로 작가가 내과의사로서 자신이 11개월간 갇힌 미국본토의 수용소에서 썼던 일기를 토대로 한다. 소설은 세부에서 서사적이며 두 명의 1세 일본계와 전쟁중 구금된 하와이출신 일본계 미국인들을 연대기적으로 기록한다. 『태양은 이민자에게 비친다』와 다르게, 미야모토의 소설은 집단적인 일본계 미국인의 역사에 대한 외상적 에피소드의 언급을 역설한다.
전쟁직후 글을 써왔던 본토의 2세 작가들중에서 하시에 야마모토는 가장 잘 알려진 작가들중의 하나이다. 1930년대에 그녀는 일본계 미국인 신문에 신랄한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1950년대 초기 그녀의 매우 기교적인 전쟁전 일본계 미국인 생활을 묘사하는 소설들은 전국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야마모토는 그녀의 에세이와 소설을 1948년 전국지에 발표하였고 1950년 존 헤이 휘트니 재단의 기회 펠로우쉽을 수상하였다. 『17개 음절과 다른 이야기들』은 그녀의 작품모음집이며 1988년에 출판되었다.
야마모토의 이야기들은 종종 1세 남성과 2세 여성의 긴장과 2세와 1세사이의 관계 특히 어머니와 딸의 유대를 탐구한다. 그녀의 단편중 2개, "17음절"(1949)과 "요네코의 지진"(1951)은 야마모토의 감성적인 주제처리와 모호한 서술양식을 예시해 준다. 표면상 한 2세 청소년기의 일본계 주인공의 성적 자각을 다룬 "17 음절"은 한 젊은 여성의 어머니와 그녀의 시인으로서 좌절된 열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네코의 지진"은 한 어린 2세 소녀가 필리핀 고용인에 매력을 느끼는 와중에 그녀의 어머니의 동일 남성에 대한 혼란스러운 파생이 드러나는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적고 있다. 야마모토는 두 이야기 모두에서 어머니와 딸 사이의 지속적 유대를 발전하는 것을 구조화하는데 이러한 병치는 세대간 전승되는 파열과 고통의 유산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17음절"에서 로지에 하야시는 젊은 주인공으로 그녀의 성을 발견하나, 그녀의 자각은 그녀 어머니의 낭만적 과거에 관한 말썽많은 폭로에 의해 복잡해진다. 이와 유사하게, "요네코의 지진"에서 어린 요네코의 순진한 반함은 그녀의 어머니의 더욱 진지한 고용인과의 정사를 반영한다.
야마모토는 전쟁 직후 구금을 언급한 소수의 2세들중의 한명이다. "미스 사사가와라"(1951)는 동료 수용소포로들에게 미쳤다고 여겨지는 한 무희의 기억속에 출몰하는 이야기이다. 처음 나이든 무희에게 흥미를 느낀 수용소원들은 그녀의 무관심하고 당혹스런 태도에 의구심을 품는다. 그 재현에 짐짓 단순해 보이는 이 야기는 전쟁중 일본계 미국인에게 던져졌던 의심에 대한 무언의 암시들로 인해 중층적이 된다. 미스 사사가와라는 모든 일본계 미국인, 특히 전쟁중 충성을 보이지 않고 결국 구금된 일본계 미국인들의 상징이 되었다. 따라서 공동체내부의 긴장을 탐색하면서 이 이야기는 또한 폭 넓은 사회적 갈등 또한 비춰준다.
모니카 소네의 자서전인 『일본계 2세 딸』(1953)은 전쟁직후 구금을 묘사하는 또 다른 문학작품이다. 이 책은 소네의 가족이 호텔을 경영했던 시애틀 일본계 공동체에서의 유아기부터 미니토카의 구금, 그리고 작은 인문학 중심대학에 최종 정착까지의 생애에 걸쳐있다.
『일본계 2세 딸』은 한 2세의 정체성의 발달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책의 서두에 노네는 자신의 유아기의 이중성에 대해 언급한다: "일본학교는 너무 초등학교와 달라 나는 매일 카멜레온처럼 앞뒤로 성격을 바꾸었다. 베일리 카저트 학교에서, 나는 뛰고 소리치며 부두노동자 양키였으나 학교종이 울리고 문이 모든 곳에서 열리는 세시 종이 치면, 나는 갑자기 작은 소심한 목소리의 얌전하고 말더듬거리며 진지한 작은 일본소녀가 되었다"(22).
소네는 1세 와 2세들이 취업과 거주시 맞닥뜨렸던 전쟁전의 차별과 편견을 기록해 오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책은 희망적인 어조로 끝난다. 대학에서 크리스마스 휴가일중의 어느 날 미니도카에 있는 그녀의 부모를 방문한 후에 소네는 "나는 슬프게 분열된 성격대신에 온전한 인간으로 더욱 느끼기 때문에 여전히 동양인의 눈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채로 미국의 주류속으로 다시 복귀한다. 내속의 일본인과 미국인의 일부는 이제 하나로 혼합되어졌다"(238). 소네의 긍정적인 조망은, 부분적으로 책이 많은 일본계 미국인들이 미국인 삶의 주류로 동화되려고 시도하는 시기에 출판되어졌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다.
그러나, 모든 전후 문학적 서술이 일본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아주 간명하게 해결해 준 것은 아니다. 존 오카다의 『노노 보이』는 비록 구금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 후유증에 대한 강력한 기술이다. 1957년 처음 발표되었을 때, 이 소설은 거의 주의를 끌지 못하고 다소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거부되어졌다. 문제에 봉착해 있는 와중에 이 책이 전후 일본계 미국인의 고통스럽고 불안한 초상이라는 것이 고려해 이해할 만해질 수준에 이르렀다. 이 책은 젊은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과 비평가들에 의해 1970년대에 모호한 위치에서 구제되어 결국에 아시아계 미국인의 고전으로 정전화되었다. 불행하게도 오카다는 그의 소설이 재발견되기 이전에 사망했다.
전쟁의 말기에 시애틀을 배경으로 하여, 『노노 보이』는 25세의 2세인 이치로 야마다의 전시 행위 수용에 있어서 겪는 투쟁에 초점을 둔 성장소설이다. 제목의 이중부정은 17세 이상의 수용소 수감인들이 대답하도록 요구된 2가지 질문을 지칭한다. 하나는 남성들에게 그들이 미국 군대에 복무할 것인지를 묻는다. 다른 질문은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맹을 요구한다.
정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수용소내 구금자들의 복합적 반응을 표명하는 기회를 부정하면서 예스와 노만을 요구했다. 양쪽 질문에 반대한다고 대답하고 군대로 징집되는 것을 반대하면서 이치로는 감옥에서 2년을 보낸다.
『노노보이』는 이치로가 질문들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요구하는 시도를 묘사한다. 그 과정에서 이치로는 호전적이고 분열된 일본계 2세 공동체와 대결하여야 한다. 일본계 미국인들이 전쟁중 충성에 대한 문제를 찬반으로 대답하기가 강요되어진 것처럼, 전후 공동체는 유사한 이항적인 선택에 직면했다. 이치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여행을 통해 오카다는 "일본인"과 "미국인," 개인과 공동체, 동화 문화유지 사이의 극단적인 정의 사이의 회색지대를 탐험한다.
비극적으로 소설 전편을 통해 1세와 2세 주인공들은 일본인이라는 뿌리를 독특한 미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미국적 경험과 화해시키는 방법, 즉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것을 거의 찾아내지 못한다. 전쟁은 개인과 공동체에 깊고 영속적인 상처를 남겼고 일본계 미국인들이 공개적으로 전쟁의 효과를 토론하기 전에 수세기라는 시간을 요했다.
1970년대 중반에 시작하여, 일본계 미국인과 일본계 캐나다인은 그들의 전시중 경험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얻을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은 많은 2세들에게 (미국에서의) 구금과 강요된 (미국과 캐나다로의) 이주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거나 그 시절동안의 수세기간 걸친 침묵을 깨뜨리도록 고무하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2세들은 구금과 이주에 대한 그들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구금에 대해 초점을 맞춘 첫 번째 창의적인 취급은 진 와타나베 휴스턴과 제임스 휴스턴의 『만자나르여 안녕』(1973)으로 수용소생활의 세부사항과 전후 사회에 적응에서의 그 영향을 포착한 회고록이었다. 1982년에 청년층 서적의 유명작가인 요시코 우치다는 『사막으로의 추방』이라는 전쟁중 그녀 삶에 대한 자서전을 출간하였다.
2차대전중의 2세를 다룬, 가장 크게 비평상 갈채를 받은 소설은 미국인이자 캐나다인인 조이 코가와에 의해 쓰였다. 그녀의 시적이며 뇌리에 남는 소설인 『오바상』(1981)은 전쟁중 일본계 캐나다인이 감내한 외상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1972년을 배경으로 『오바상』은 한 중년의 일본계 3세 여성인 나오미 나카네에 의해 발견되고 기록된 전쟁의 효과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오미가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숙부 이사무의 죽음은 그녀의 가족사에 대한 대면의 충동을 자극하여 일본계 캐나다인에 대한 역사로 확장된다. 전쟁 전에 나오미의 가족은 밴큐버에서 안정되고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의 개시는 결국 나오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남은 가족과의 결별, 나오미의 어머니의 병든 친척 병구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일본체류, 나오미와 그녀의 오빠 스티븐 그리고 숙모 아야(오바상이라는 제목의 주인공)의 스로칸으로의 강제 이주, 더 큰 박탈속에 살게 된 알버타로의 재이주과 같은 가족의 해체를 가져오는 일련의 사건을 초래한다.
전쟁중 일본계 캐나다인의 삶의 강력하고 감동적인 기술 외에도 『오바상』은 침묵과 발화의 다양한 층위를 탐색한다. 나오미의 두 고모인 아야 오바상과 에밀리 고모는 각자의 관점을 상징화하게 되는데 나오미의 두 고모에 대한 언급은 다음과 같다: "얼마나 나의 두 고모는 서로 다른가! 한 고모는 음성속에 살고 다른 고모는 돌 속에서 산다. 오바상[아야고모]의 언어는 깊숙이 지하에 남아있으나 학사 석사학위를 가진 에밀리 고모는 언어로 싸우는 투사이다"(코가와 1982, 32). 침묵과 분절음의 상징성은 이러한 인용이 암시하는 것보다 중층적이고 더욱 복합적이다. 코가와는 침묵의 다양한 성격을 탐구하고 침묵의 억압적 면모를 비밀의 메커니즘으로, 또 침묵의 상징성을 힘과 용기의 징표로 탐구한다. 유사하게 에밀리 고모와 공식적인 캐나다법령을 통해 코가와는 얼마나 발화가 자유스럽고 또한 심원한 고통의 근원이 되는 지를 밝힌다(청 1993, 126-67).
1960년대와 70년대, 80년대에 다른 주목할만한 2세 작가등이 부상하였다. 밀튼 무라야마의 획기적인 소설 『나의 신체는 내가 원하는 전부이다』는 원래 1959년에 출판되었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널리 인정을 받았다. 하와이의 설탕 농원에서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을 사는 일본계 미국인 가족의 이 이야기는 식민농장과 가족의 정치학을 묘사한다. 화자 키요시 오야마는 가족이 큰 빚을 되갚기 위해 투쟁하는 와중에 자신의 부모와 형인 토시사이의 갈등을 상술하는 젊은 2세이다. 1세와 2세 사이에 발달된 적대적 역동을 통해 무라야마는 가족에 충실한 전통적인 일본적 가치와 착취적이고 인종적으로 계층화된 식민농장제도사이의 복잡한 상호관계를 탐색한다. 토시에게서 무라야마는 개인적인 한계에 반항하며(가족에 의해 그러한 임무가 부과되기도한), 덜 명시적으로 정치적 압제에 저항하는(식민농장에 의해 상징화된) 등장인물을 창조한다. 전편을 통해 무라야마는 명확히 식민농장의 인종적 계층구조와 결속감을 막기 위해 인부를 나누는 전략을 묘사한다.
『나의 신체는 내가 원하는 전부이다』는 또한 섬에서 발달된 "혼성 영어"나 하와이 크레올 영어에 의한 첫 번째 문학작품들중의 하나이다. 이야기의 서술은 비록 표준영어가 쓰이지만 했지만 대화의 대부분은 혼성어인 "피진"어로 쓰였다. 문학에서 지역 방언과 흑인영어를 합법화한 작가들처럼 무라야마는 문학어로서 "혼성영어"의 사용을 개척하였다.
2세 희곡작가이면서 단편작가인 와카코 야마구치는 1950년대에 진지하게 집필을 시작하였으나 무라야마처럼 1970년대까지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단편작가라기보다는 희곡작가로 더 잘 알려진 야마우치는 무대를 위해 단편몇개를 각색하였다. 그녀의 희곡들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그리고 영혼은 춤출 것이다』로 같은 제목의 단편에 근거하고 있다. 한 2세 여성의 회고록인 단편은 야마우치의 작품속에 빈번한 많은 주제들, 즉, 성별의 모호성, 1세와 2세간의 긴장, 1세의 제한적 삶, 특히 탈출을 다양한 방식으로 찾는 여성을 잘 포착하고 있다. 화자는 황량한 사막의 농업공동체 속에서 자라나 그녀의 이웃인 냉담하며 신경증적인 1세 오카부인에 대한 매혹에 대해 기술한다. 이 이야기는 오카부인의 화자를 놀라게도 하고 흥미를 돋구기도하는 비관습적인 행동을 묘사하며 오카부인의 고통스런 삶의 역사를 펼쳐놓는다.
야마모토와 마찬가지로, 야마우치는 종종 2세 화자의 관점을 통해 1세의 삶을 탐색하며 『그리고 영혼은 춤출 것이다』에서 처럼 공감을 갖고 1세 여인의 비관습적인 행동을 묘사한다. 1세 여성의 알코올중독, 부정, 가족의 유기를 2세의 렌즈를 통해 보면서 야마우치는 여성의 엄격한 규준에 대한 반항의 역사를 재발견하고 상술한다. 그녀는 사회기준을 종종 무시하며 자신의 욕망을 찾는 강력한 여성 등장인물을 창조한다.
미쯔예 야마다는 세대간의 경계를 건너뛰는 작가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그녀는 원칙적으로는 1세이지만 2세 동료들 사이에서 성장하였다. 명백한 페미니스트이며 반 인종주의적 관심사를 다룬 그녀의 시는 3세 행동파들의 관점을 반영한다. 야마다의 첫 번째 시집인 『수용소 노트』는 미니도카에 구금된 시기(혹은 그 직후)쓴 작품과 와 1970년대의 시들을 을 모은 것이다. 이 책은 그 직설적인 아이러니와 인식의 깊이로 잘 알려져 있다. 거친 감정이 풍자적 렌즈를 통해 여과되어지는 것이 야마다의 초기시의 특징이다. 그녀의 많은 시는 통렬한 세부묘사로 불의를 분개로 가라앉히고 있다.
2번째 책인 『사막 달리기』(1988)에서 야마다는 『수용소 노트』의 주제와 감정적 풍경의 많은 부분으로 다시 돌아온다. "클럽"과 같은 시는 그녀의 성과 인종의 관심사를 결합하는 시이다. 첫 연은 시의 주요 전제를 펼쳐놓는다:

그는 나를 일본여성이 차고 있던
키모노의 단으로 나를 쳤다.
이 입상한 색깔입힌 나무조상은
일본과 아마도 홍콩에서
완벽히 조각되었다.
(1988, 76)

이 시는 아시아 여성에게 부여되는 정형화된 성에 대한 폭력적 암시를 탐색하며(화자에게 후려치는 대상이 되는 일본인형에 의해 대표되는)이 되는 정형에 의해 대표되는 여성성의 기준자체가 그에 맞춰 살지 못하는 여성에게 파괴적인 힘이 됨을 암시한다. 전 세계적인 여성성, 인종주의, 인권남용에 대해 언급하면서 야마다는 개인적 정치적 관심을 융합하여 그 속에서 3세 행동파 작가들과의 강한 연대를 취한다.

정체감의 확장: 3세 행동파 작가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은 자의식적 "아시아계 미국인"의 문학적 생산의 시기였다. 3세 작가들은 종종 이러한 노력의 중심에 있었고 일본계 미국인의 문화와 정체감의 경계를 확장해 나갔다. 당시의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정치에 영향 받아 이들 작가들은 자신의 문학작품을 공공연히 전 세계 식민독립투쟁을 미국내 유색인종 투쟁과 비유하며 정치적 의제와 연결시켰다.
『그리고 영혼은 춤출 것이다』 3세 작가들은 또한 1세와 2세의 전통과 문학을 재발견하려 하였다. 로손 이나다와 재니스 미리키타니는 1세와 2세 문학의 재발견에 주요 인물이었다.
이나다는 영향력 있는 문선집인『아이에』(1974)의 공동 편집자중의 하나였고, 미리키타니는 1세, 2세, 3세의 저작과 시가예술 전집인 『아유미』(1980)의 주 편집자였다. 문학적인 일본계 미국인의 이전세대에 대한 재발견은 3세 행동파 작가들에게 더 강한 역사인식을 제공하였고 그들에게 더 거대한 공동체의식을 갖고 글을 쓰게 하였다.
3세 작가들은 또한 문학의 정치학을 인식하였고 자신의 경험에서 형성된 스타일이나 미국과 국제적으로 다른 유색인종의 스타일을 선호하여 전통적 문학형태를 거부하였다. 많은 3세 여성들은 1970년대의 여성운동에 영향 받아 성과 그 함의에 대한 의식을 갖고 집필하였다.
1960년대 후기에 시작하여 1980년대 초기에 걸쳐 계속되면서 많은 3세들이 시대의 사회운동에 근거한 미학적 정치적 감성을 갖고 글을 썼다. 그들의 작품은 지역공동체의 아시아계 신문과 문선집에 출판되었다. 이나다와 미리키타니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들 작가그룹의 정신과 음조를 포착하였다.
로손 이나다의 시 "E.H.W를 위하여"에서 화자는 "내가 태어난 곳/ 내가 계속 태어나고 있는 곳에/더 많은 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절들은 이나다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품인 『전쟁 이전: 자생적 시들 』의 서문으로 사용되어졌다. 이 책은 스타일, 주제 그리고 영향의 혼합체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포스트모던 일본계 미국인의 저작을 예시해준다.
『전쟁 이전』은 주요 출판사에서 발간된 일본계 미국인의 첫 시선집이며 같은 해에 몇몇 아시아계 미국인 행동파들이 인종적 자학의 반영이라고 비난했던 다니엘 오키모토의 자서전인 『위장된 미국인 』이 출판되었다. 비록 전통적인 서구 시어와 수사법에 조예가 있었지만, 이나다는 구어를 시의 재료로 주장하며 강력한 감성을 현대적 관용어와 혼합하였다. 재즈는 이나다에게 큰 영향을 주어, 그의 시에는 음악의 리듬과 음형, 전략등이 흐른다. 그의 저작을 통해 이나다는 운문의 청각적 성격을 고집하였다. 이러한 특질은 1992년의 시비인 『수용소의 전설 』에 다시 모습을 보인다.
때로, 이나다는 "유엔에서 이루어질 행위예술에 대한 예상 시나리오"라는 시에서 화자가 유엔의 청중을 폄하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강국이 되는 것을 경고하듯이 공개적인 정치적 입장에서 시를 쓴다. 그러나 그의 시 "우리의 앨범에서"는 정치가 더 미묘하게 표현된다. "우리의 앨범에서는" 수용소에서 삶에 대한 일련의 파편화도니 초상이다. 시의 다음 구절은 순수와 폭력의 부조화스러운 혼융을 드러낸다:

해야 할 일이 별달리 없었기에
그들은 우리를 포탄사격장으로 우리를
이끌어 우리 모두를 집합시켜
사구속에서 산탄알을 찾으러 구멍을 파게 했다.
그들이 모든 일을 끝내고

해야 할 일이 별달리 없었기에
그들중 하나는 꼬리를 다리사이
에 넣은 채 달리는 길 잃은 개 한 마리를
쏘아 머리를 관통시켰다.
(1971, 17)

이와 같은 연은 시가 묘사하는 수용소 포로들을 군인과 함께 지켜보는 경험을 한 아이를 위협하면서 또 그에 의해 목격된 일상의 폭력을 본능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구금에 대한 반론보다 더는 아니더라도 그 만큼 강력하다.
로손 이나타와 마찬가지로 재니스 미리키타니는 그녀의 작품을 전 세대 일본계 미국인 작가들과 다르게 구별 짓는 강력한 반향을 가지고 어려운 토픽에 대해 쓴다. 그녀의 2권의 책 『강에서 깨어나』(1978)와 『침묵을 내뿜으며』(1987)는 개인과 정치 간의 연관에 깊이 관련된 감수성을 드러낸다. 때로 그녀는 "일본 녀석들(Japs)"에서 의 다음 몇 줄이 보여주든 선언문의 대담함을 가지고 글을 쓴다.

만약 네가 너무 어둡다면
그들이 너를 죽일 것이다.
만약 네가 너무 상냥하다면
그들이 너를 불구로 만들 것이다.
만약 네가 너무 강하다면
그들이 너를 매수할 것이다.
만약 네가 너무 아름답다면
그들이 너를 능욕할 것이다.
(1978, np)

그러나 미리키타니의 수사법은 실체와 성찰을 지니고 있으며 그녀의 예술적 스타일은 이러한 시들이 가리키듯이 구어체 전통 리듬과 어조를 풍부히 담고 있다. 그녀의 시는 전 세계의 억압받는 자의 경험을 일본계 미국인들, 특히 1세 2세의 일본계와 연관짓고 있는데 "물을 공격하라"의 다음 연은 그러한 예이다.

신문지/상의 얼굴에서의
내게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녀는 그때 당시 혹은 땅이/바짝/말라갈 즈음의
수용소 직후
그녀는 할머니였을 거라는 것
. . . . . . .
베트남 여성인
그녀의 얼굴은 신문지/상의 전쟁에 의해
늙게 부식 인쇄되어졌다.
어머니/할머니로서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감내하였다.
(1978, np)

미리키타니의 저작에 주입된(국가, 인종과 성별간의) 연관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극빈자와 해고자들과 함께 공동체 활동가로서 작품속에 저절로 토대를 이룬 정치적 신념과 행동에 근거하고 있다. 비록 미리키타니는 시가 정치적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신념으로 글을 썼지만, 그녀는 또한 시의 한계를 깨달았다. 예를 들어, "정글의 썩은 지역과 벌린 팔"속에서의 화자는 베트남 상이군인의 경험의 잔혹함을 듣고 난 후 고백한다:

나는 그의 파멸의 와중에
서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울었다.

나의 정치적 교육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모든 것에 대한 수사학적 대답은?
나의 실천으로 옮겨질 이론은?
나느니 예술 속에 삶의 강렬함은?
(1978, np)

이러한 종류의 자기반성은 미리키타니의 작품을 동시대의 다른 행동파 작가들의 작품과 동 떨어지게 만든다. 그녀는 뒷골목의 설교가의 힘을 갖고 그리고 철학가의 성찰을 갖고 글을 쓴다.

지역적 정체성: 지역적 특성을 갖는 3세 작가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3세 작가들의 글은 작가들이 종종 1970년대 행동파 작가들에 의해 제공된 토대를 구축해나감에 따라 일련의 다른 흐름속으로 바뀌어져갔다. 현대 3세 문학의 한 부류는 특히 지역적 위치에 따른 뿌리의식의 특징을 갖는다. 지역적 정체성을 갖고 저작을 해온 3세 작가들은 전쟁전의 2세 작가들 특히 토시오 모리의 글을 회고한다. 그러나 이들 3세들중 많은 작가들이 극적으로 사라지거나 변하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 공동체를 파악하는데 있어 위기감을 갖고 글을 쓴다.
이러한 동기는 하와이출신의 3세 작가인 실비아 와타나베의 단편집 『죽은 자에게 말하기』(1992)에서 분명하다. 그녀의 창작동기에 대해, 와타나베는 "나는 내가 사랑했고 사라질 위험에 처한 듯 보이는 삶의 방식을 기록하길 원했기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나는 나의 부모와 조부모의 이야기를 구하고 싶었다"(1992, np)라고 말하고 있다.
『요코하마, 캘리포니아』처럼, 『죽은 자에게 말하기』속의 이야기는 한 지역적 장소, 즉 조그마한 하와이의 시골마을에서 일어난다. 많은 이야기들이 아마도 돌이킬 수 없을 변화의 가장자리에 있는 등장인물들을 다룬다. 이러한 인물들은 급변하는 관계와 부분적으로 현대화에 의해 생겨난 관습에 당면한다. 이러한 주제는 제목이 된 단편소설 "죽은 자에게 말하기"에서 집결된다. 여주인공 유리 시마부쿠로는 현대 과학이 아니라 전통 지식에 능한 마을의 장의사이자 죽은 자에게 말하는 숙모에게 도제수업을 받는다. 불행하게도 유리는 그 일을 참아내지 못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에게 말하는 숙모와 함께 머물면서 오랜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익힌다. 유리의 숙모와의 관계는 진보와 개인적 충성에 대한 다른 태도에 대한 상징이 된다. 유리와 다르게 숙모자신의 아들인 클린턴은 자신의 어머니와 경쟁하게 되어 "실물과 같은 예술적 기술과 위생적인 엄격한 기준"을 선전하는 현대적 장의법을 홍보한다. 유리의 자신의 스승에 대한 충성을 묘사하면서 와타나베는 특정한 장소와 공동체와 연관된 전통에 경의를 표한다.
실비아 와타나베와 같이 몇몇 3세 작가들은 하와이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이 섬의 "지역적" 문화라고 일컫는 것을 묘사한다. 지역 문화는 하와이의 관광문화와 대조되어 존재하며 사람과 전통의 혼합을 담고 있다. 많은 현대의 일본계 미국인의 지역적 작가들에게, 『대나무 능선: 하와이 작가들의 계간지』는 출판의 원산지로 활용된다. 1978년에 시작된 이 잡지는 꾸준히 하와이의 아시아계 미국인의 문학 공동체의 목소리라는 특징을 지녀왔고, 잡지의 기고자들중 많은 이들이 정기적으로 문학과 하와이의 아시아계 문화를 토론하기 위해 소집된다.
3세 작가 줄리엣 코노는 대나무 능선 그룹에 속해 있으며 그녀의 시집 『힐로의 비』(1988)는 힐로와 그 주변 지역과 뒤 엉켜 연결되어있다. 장소는 『힐로의 비』에서 너무 충만되어있어 거의 하나의 등장인물이 된다. 시집의 3부는 코노 가족의 3대를 탐구하고 친척에 대한 감성적 역사를 기록한다. 코노는 드물게 품격있는 스타일로 회상과 복합적인 감정을 하나로 짜아넣는다. 그녀는 힐로와 강하게 결부되어 이 특정 지역과 그 지역의 가족사에서의 중요성의 인식이 미래 세대들을 위해 또 그들에 의해 영속되어질 지를 염려한다.
장소에 대한 감각은 게럿 카오루 홍고의 두 시집, 『노란 빛』(1982)과 1987년의 라몽 시선집 수상작인 『천국의 강』(1988)의 많은 시들에 중심적 위상을 갖고 있다. 와타나베나 코노처럼 홍고는 그가 태어난 장소인 하와이와 어린 시절 일부를 지낸 남부 캘리포니아의 다른 일본계 미국인 공동체에 대해 글을 쓴다. 때로는 초기 행동파 시들의 정신을 갖는 우아한 운문으로 홍고는 종종 특정 지역을 더 깊은 회고와 연결의 근거로 사용한다.
홍고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만가인 "부두"에서 다음구절은 인상적이다: "나는 호화스러움이 우리 모두가 원하는 무언가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다소 박탈과 감소되는 세상으로부터의 휴식인/ 아주 이상한 조그만 드라마/ 그것은 보통의 것을 추방하여 우리를 우리자신의 이야기로 흥분되게 한다"(1988, 62). 홍고의 시는 "보통의 것"을 시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이야기"의 힘을 기억나게 한다. "부두"에서 그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숙고는 홍고를 자신의 아버지, 동남아의 아시아계 이민자, 그리고 자신의 이민 온 조부모들을 잇는 유연한 병치로 이끄는데, 이는 세대와 지역과 인종적 선을 넘는 연결이다. 연결에 대한 이러한 욕망은 "전설"에서도 메아리치는데, 이 시에서 시카고에서 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무차별 총격에 의한 죽음을 묘사된다. 총격을 상술한 후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밤, 나는 데카르트의 모든 것을
의심하는 위대한 용기에 관해 읽는다.
그 자신의 위대한 존재를 제외한.
그리고 나는 콘크리트에 누운 상처받은 인간과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수치를 느낀다.

그가 죽어갈 때 밤하늘이 그를 덮게 하라.
베짜는 소녀가 천국의 다리를 건너
그의 차가운 손을 잡게 하라.
(1988, 67)

비록 화자는 죽은 남자와 동떨어진 어떤 거리감을 인정하지만 다음 연에서 그는 데카르트의 유아론을 거부한다. 천상의 짝이 일년에 한번 만나게 허용된다는 점성술의 신화인 베짜는 소녀의 전설을 환기시키며, 홍고는 더 심원한 방식으로 연계를 요구한다.
데이빗 마스 마스모토의 이야기에서 장소와의 연관은 캘리포니아의 산 요아킨 계곡의 하변부의 일본계 미국인 농업 공동체라는 특정 지역에서의 가족사의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불의 춤"은 그의 시집 『침묵의 힘』(1984)의 서두를 장식하는 시로, 극적으로 1938년의 델 레이라는 조그만 계곡마을의 문화적 지형을 펼쳐놓는다. 이 마을은 문자 그대로 철도 협궤에 의해 반분되어 한편은 이민 온 일본계 미국인 공동체, 다른 한편은 더 번영을 누리는 유럽계 미국인이 자리 잡고 있다. 오봉축제(죽은 자의 축제)의 밤에 의심스러운 불길이 일본계 마을 쪽에서 발생한다. 백인 거주자들은 일본계 공동체가 불길을 잡기위해 투쟁하는 것을 도와주지 않고 단지 바라보고만 있다. 불이 자신의 마을 쪽으로 번져갈 때야 비로소 유럽계 미국인 마을사람 들은 행동한다. 마스모토의 이야기는 미묘하게 계곡의 복잡한 인종적 역사와 그 지역에서의 일본계 미국인의 초기 투쟁에 대해 밝히고 있다.
비록 2세이지만 인류학자 아케미 키쿠무라는 그녀가 성장했던 캘리포니아의 센트랄 계곡에 관해 3세적인 감수성을 갖고 글을 쓴다. 『모진 겨울들을 넘기며: 한 일본계 이민여성의 삶』(1981)과 『지켜진 약속: 한 일본계 2세 남성의 삶』(1991)의 두 권의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부모와 일본과 캘리포니아에서의 그들의 생활에 대해 쓰고 있다. 두 책 모두 구전된 역사적 인터뷰에 근거하여 인류학적 기술을 극적 서술구조와 결합하여 일본계 미국인의 전원생활을 보여준다.
사사키(R. A. Sasaki)는 그녀의 시집 『"베틀"과 다른 단편들』(1991)에서 전후 샌프란시스코의 일본계 미국인에 대해 쓴다. 계속 등장하는 인물들과 연결되어 이야기는 1950년대와 1960대에 샌프란시스코의 리치몬드구에서 자란 베이비 붐시대의 일본계 3세를 묘사한다. 사사키의 이야기는 3세가 인종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바꾸는 다양한 방식을 탐구하고 문화적 안정을 모색한다.
2명의 3세 희곡작가들은 일본계 미국인들의 복잡성을 포착하고 있다. 1980년대 전반에 걸쳐 필립 칸 고탄다의 희곡은 일본계 미국인 가족들의 복잡성을 탐색한다. 비록 특정 지역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희곡들은 그 근거를 서부 해안의 일본계 미국인 공동체의 역동성속에서 찾는다. 『한 2세 어부를 위한 노래』는 고기잡이가 인간의 발달의 다양한 단계를 위한 상징이 되는 한 2세 남자에 대한 찬가이다. 『씻기』(1990)와『어두 수프』는 일본계 미국인 가족들 간의 세대간 갈등을 탐구한다.
캐나다인인 3세 릭 시오미는 다양한 스타일로 희곡을 쓰면서 캐나다의 2세 공동체의 정신을 포착해왔다. 『황열병』과 『한번으론 충분치 않다』는 일본계 캐나다인인 샘 시카제가 인종적 갈등을 조사하면서 밴쿠버의 일본계 캐나다인 공동체의 재건을 목격하는 모험을 따른다. 『타다오 아저씨』는 한 일본계 캐나다인 가족의 전쟁의 파장과 전시처우에 대한 금전적 배상을 얻으려는 일본계 캐나다인의 노력을 탐색한다. 때로는 드라마와 미스터리, 코미디를 한 희곡내에서 뒤 섞으면서 시오미의 스타일은 간혹 포스트모던 일본계 미국인의 글쓰기의 면면을 짐작케 해준다.

정체의 다양성: 포스트모던 일본계 미국인의 문학

아마 1970년대 행동파 작가들이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정치적 문화적 정체를 형성하였기 때문에 행동파이후의 작가들은 소수계 미국인으로서 그들의 경험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의 타당함을 당연시하였다. 비록 일본계 미국인으로서의 경험과 역사에 대한 감각에서 글을 쓰긴 했지만, 포스트모던 일본계 미국인 작가들은 일본계 미국인 문화와 공동체와 명백한 연관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는 다른 정체성과 공감을 탐색한다. 이러한 작가들은 다양한 정체성과 장소 그리고 일반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특징짓는 뿌리 없음의 감각으로 글을 쓴다.
전국 시리즈 시집 상을 수상한 그의 시집 『우리가 길을 잃은 이후』(1989)와 그의 회고록 『일본인으로 전향하기』(1991)에서, 대이빗 무라는 홍고처럼 그와 표면적으로 거의 공통점이 없는 타자들 (원폭의 생존자, 남아프리카의 첩보원, 혹은 베트남 이민자들)과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연결짓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타자"와 동일시하는 능력은 아마도『우리가 길을 잃은 이후』에서 중심적인 인물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에 관한 11개의 대답한 시 시리즈에서 가장 잘 예증된다. 이러한 시들에서 무라는 때때로 파솔리니의 목소리로 글을 쓰면서 남색의 공산주의 영화 제작가이자 작가의 삶을 탐구한다. 무라는 지형적으로나 인종적으로 근거를 둔 어떤 것도 넘어서는 병치와 유연한 정체감의 포스트모던 감각을 잘 전달하고 있다.
씬시아 카도하타의 소설은 또 다른 포스트모던 일본계 미국인의 글쓰기를 제공한다. 비록 『떠있는 세상』(1989)과 『사랑의 계곡의 한가운데서』(1992)는 무라의 시에서 선별된 일련의 시들에 의해 암시된 것 보다는 덜 유연한 정체감을 갖고 있지만 그녀의 작품은 뿌리 없음과 무작위의 감각을 전하고 있다. 한 조숙한 청소년에 의해 서술되는 『떠있는 세상』은 올리비아 오사카와 그녀의 어머니, 양아버지, 세 명의 남동생들과 성미급한 할머니가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을 두루 여행하면서 겪는 경험을 기록한 악한 소설이다. 카도하타의 최면적이고 말을 절약하는 산문 스타일과 영화적 서술구조는 책을 가득 메우는 삐걱이고 때론 초현실적인 상황을 강화시킨다. 글쓰기에서의 말수 적음과 이야기의 마술적 성격의 교차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와 다른 환상적 사실주의 스타일의 작가들의 글을 암시하는 일관된 약한 무방향성의 감각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떠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일본계 등장인물들은 비관습적이기 때문에 소설은 일본계 미국인의 경험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혼전 섹스를 즐기는 카도하타의 등장인물들은 잔인하고 거칠게 행동하며 웅변적으로 말하면서 종종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모범적 소수인종"이라는 인상을 무시한다. 비록 설득력있는 등장인물 구성을 통해 카도하타는 미묘하게 그러한 신화를 탐구하여 독자들에게 어떤 단일한 일본계 미국인의 경험은 없다는 것을 기억시킨다.
극작가 벨리나 하스 휴스턴은 문화와 인종을 가로지르는 정체성의 복잡성을 탐구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군인과 이차대전 말에 결혼한 한 일본계 여성의 딸인 휴스턴은 미군과 결혼으로 종종 고립되어있던 전후 이민 온 일본계 미국인 여성("전쟁 신부"라고 지칭되던)에 목소리를 부여한다. 『아사 가 키마시타』(아침이 왔다)는 미군 점령시의 일본에서 한 일본인 여성과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간의 사랑을 묘사한다. 『홍차』는 문화간의 정체성의 주제를 확장하여 5번째 전쟁신부가 자살을 시도한 이후 모인 4명의 일본계 미국인 전쟁신부들의 삶을 탐구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지역적 경계를 넘어서면서 캐런 테이 야마시타는 두 편의 소설, 『열대우림 숲의 호를 통해』『브라질 고원』을 일본계 이주인구가 가장 많은 브라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야마시타는 그곳서 발달된 브라질의 일본계 공동체를 연구하면서 10년을 살았었다. 『브라질 고원』은 5명의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서술되는데, 브라질의 일본인 코뮌에 『라쇼몽』[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작가 아꾸다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1915년 발표한 작품] 서술이다. 비록 『브라질 고원』의 다중화자의 사용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암시하긴 하지만 『열대우림 숲의 호를 통해』는 더욱 포스트모더니즘 스타일의 징후를 나타낸다. 환상적 리얼리즘, 풍자, 미래파적 소설의 아찔한 혼합을 통해 소설은 단기적인 이득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어리석음과 물질적 안락을 정신적 안녕으로 대체하려는 헛된 시도를 탐색한다. 책의 화자를 통해 야마시타는 소설에서 작중 주인공들중 브라질의 복권을 통해 재산을 모은 카주마사 이시마루라는 한 일본계 이민자의 이마로부터 신비하게 조금씩 회전하는 작은 은빛나는 구체와 같은 초현실적 세계를 세밀히 나타낸다. 『열대우림 숲의 호를 통해』는 특정 일본계 미국인 등장인물 논의에서 놀라우리만큼 복합적인 장르와 인물의 혼합으로 옮겨가는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일본계 미국인 문학사에서 주목할 작품이다.
일본계 미국인의 정체성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었고 계속 그러할 것이다. 이번 장에서 다룬 정돈된 분류는 단순히 지침이지 개별 작가나 작가그룹에 대한 정체성의 정의적 언술로 의도된 것이 아니다. 역사, 정치, 그리고 문화의 상호작용은 일본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많은 시간에 걸쳐 영향을 주어왔고 분명한 일본계의 정체성의 발달은 래리 타지리가 1949년에 내린 판정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학을 창조하는 일본계 미국인들의 3세대에 의해 기록되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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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구 선생님 발제 <- 현재글

김애주
200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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