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르네상스분과

 *근대 영문학 분과

 *현대 영문학 분과

 *비평이론분과

 *미국문학분과

 *기획세미나

연구회소개 / 회원가입 / 분과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분과 자료실 / 분과 공지 / 분과원 소개 / 분과 프로젝트 / 분과 게시판 / 분과 초기화면
 

제   목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삐딱하게 보기(성은애)

작성자

작성일자

2001-12-29

이메일

조회

4025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삐딱하게 보기
어린 시절 열광하며 보았던 <황금박쥐>나 <우주소년 아톰><밀림의 왕자 레오>등등이 몽땅 ‘일제’라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물론 그 뒤에도 <베르사이유의 장미>니 <캔디>니 하는 예쁜 '일제' 만화들을 계속 보긴 했지만, 나는 왜 그런지 ‘아니메’ 혹은 ‘저패니메이션’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나 오시이 마모루의 팬들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도 굳이 그들의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매혹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같다. 그러다 정말 좋아지면 어쩌나… 하는. (일본 영화가 개방되기 전,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두려움을 느꼈더랬다….)

뭘 어쩌긴 어째. 영화나 만화를 애국심으로 보는 것도 아니겠고, 미국 영화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헤헤거리고 보면서 굳이 일제 애니를 안 본다는 심뽀는 말하자면 ‘밥통은 역시 일제야’ 하다가도 축구 한일전만 하면 목에 핏대 세우며, 말레이시아한텐 져도 일본한테는 지면 안 된다고 열을 내는, 면면히 흐르는 ‘핏줄’ 탓이 아니었나 한다.

어찌되었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를 사운드 빵빵한 극장에서 이따만한 화면으로 보게 되었다. 입이 쩍 벌어지며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십수년전의 작품임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화면도 볼만 했고, 애들이 보기엔 좀 무겁고 느린 감이 있었지만 탄탄한 구성도 수준급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래 세계의 기기묘묘한 식물과 곤충들을 그려낸 그 기발한 상상력도 인상적이었고,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한다는 환경보호, 혹은 친자연적인 메시지도 그런대로 공감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만화 한 편 보다말고 어느틈엔가 나는 축구 한일전을 볼 때처럼 열렬한(?) 민족주의자가 되어 작품 곳곳에 숨겨진 ‘일본적’인 메시지를 찾아내고는 그 섬찟함에 몸서리를 치는 것이었다. 세상을 7일만에 불바다로 만들었다는 거신병이 내뿜는 불더미에서 나는 핵무기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포를,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대한 집요한 기억을 떠올렸으며, 그 모든 것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앞으로 돌진하는 ‘오무’의 붉고 둥근 눈동자에서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히노마루’를 떠올렸다.

성난 오무의 공격을 막으려고 꽃잎처럼 가벼이 몸을 던지는 나우시카의 모습에선 진주만에 몸을 던진 ‘가미가제’가 연상되었으며, 이는 비장한 얼굴을 하고 마을로 돌아가는 막바지에 “바람(=가제)의 신(=가미)이여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나우시카의 말에서 이미 예상되었다.

왜그런지 나는 일본 영화나 만화에서 자기 한 몸을 ‘의롭게’ 바쳐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장면을 보면, 그렇게 한 개인을 쉽사리, 가뿐하게 죽음으로 내몰고 그러한 희생을 미화하는 감수성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할리우드 영화에도 그런 ‘희생’은 있지만 그렇게 ‘산뜻하고 아름다운’ 희생은 드물다.) 게다가 우리의 윗 세대를 그런 감수성으로 물들여 제국주의 전장터로, 위안부로 마구 내몰았다고 생각하면 나우시카의 깨끗하고 고귀한 희생을 보며 감동하는 일이 좀 착잡해진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정연한 알레고리로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미화하거나 최소한 불가피한(오무나 부해가 그러하듯이) ‘독소’라고 주장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작품의 주제는 지극히 ‘탈정치적인’(이것이 또한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정치적’ 자세이기도 한 것같다) 자연과 전쟁과 인간이라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고, 다같이 노동하며 자연과 싸우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바람계곡의 삶에는 한때 좌파였다는 하야오 감독 특유의 유토피아적인 비전까지 깃들어 있다.

문제는 탈정치적, 탈시대적, 탈역사적인 듯 보이는 자연과 인간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 속에 간간이 삽입되어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침투’하는 특정한 감수성과 그 문화, 그리고 그것이 ‘일본적’임을 의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감각’이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수준에서 십수년전에 나온 이 작품 하나를 뛰어넘기도 무지무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관객들이 아무런 ‘항체’도 없이 (수많은 ‘할리우드 키드’들이 미국 영화를 무비판적으로 동경하며 보아왔듯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불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다소 무거워진다.

내가 느꼈던 ‘매혹에의 두려움’이란 그런 것이었나보다. 그랬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매혹은 애니메이션이 단순히 기술적인 진보와 매끄러운 그림으로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상과 역사에 대한 독창적인 시선, 인문학적 토양과 풍부한 상상력이 매혹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디즈니엔 없고 하야오에겐 있는 것, 그리하여 더욱 강력하게 우리에게 파고드는 그 무엇, 그것이 나는 두려운 것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대해 또 한 마디...
확실히 만화책을 읽는 것은 '중독성'이 있다. 만화책을 읽을 때면 어린 시절 컴컴하고 퀴퀴한 만화방의 나무 의자와, 검정 고무줄로 책을 걸쳐놓은 선반들과, 때국물 절은 질 나쁜 종이의 책들과, 난로 위에서 무럭무럭 김을 뿜던 오뎅과 ... 그런 것들이 생각나서 더 그렇다.

애가 조른다는 것을 핑계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책으로 구해서, 애보다 내가 먼저 읽어버렸다. 요새는 소설-영화-애니메이션-만화-게임 등등이 서로 마구 경계를 넘나들며 각색이 되는 바람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우시카>라고 해도 그게 극장용 애니메이션인지, 만화책인지 구분해서 이야기해야 할 판이다. 골치아프기로 하면 영문학의 Textual Criticism에 비할 만하다.

아무튼 그런저런 이유로 읽은 만화책 <나우시카>는 극장에서 본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다른 스토리였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가미가제니 핵무기니 하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냄새가 난다고 했던 말을, 책에 대해선 대부분 취소해야 할 듯싶다. (왜 극장판으로 만들면서 이런 부분이 강조되었는지 미스테리다.)

극장판 <나우시카>는 전 7권으로 된 이야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삼국지>와 <스타크래프트>와 <스타 워즈>와, 생태주의에 관한 철학적인 논쟁들과, 요즘 유행하는 소위 '판타지 소설'의 여러 문법들과, 심지어 같은 작품들과.... 그런 것들이 몽땅 뒤범벅이 되어 읽기에도 숨이 찬 스토리이다.

나우시카가 신격화되고, 전체적으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것은 오히려 애니메이션보다 심한 듯도 하고, 그만큼 공감이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나우시카의 평화주의가 황폐한 전쟁터에서시험당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정신적 성장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것은 흥미롭다. 게다가 페지테나 토로메키아는 물론,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던 주변 국가들의 정치적인 역학관계나 크샤나 같은 인물에 대한 공감어린 묘사, 그리고 하나씩 밝혀지는 부해와 오무의 비밀 등등은 스토리를 탄탄하고 설득력 있게 엮어내는미야자키 하야오의 저력을 엿보게 해준다.

좋은 만화영화라고 애 끌고 극장 갔다가 정작 애는 좀 지루해 하기에,이거 누구 말마따나 '치맛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된 거 아닌가 하고 약간 허탈했던 나는, 오히려 내용은 훨씬 더 골치 아픈 것같은데, 책으로 본 <나우시카>가 훨씬 재미있다는 아이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기회 닿으면 한번 보시기 바란다. 오늘날 만화가 뭘 보여줄 수 있는가, 공부 삼아서...^^;;;

그래도 난 만화책은 당분간 그만 볼란다. 한번 잡으면 끝장을 봐야 되기 때문에 생활 리듬이 너무 많이 망가진다. 설 연휴 지나면 이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미뤄두었던 서평부터 쓰고, 논문도 하나 쓰고, 담 학기 강의 준비도 슬슬 해야 할 판이다. 따라서 이 게시판에다가 만화 얘기 늘어 놓는 것은 당분간 드물 듯하다...

민족의 명절 설 연휴를 앞두고,
일없이 분주한,
성은애였습니다.

 

   관련글 제목

작성자

작성일자

조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삐딱하게 보기(성은애) <- 현재글

2001-12-29
4025

 

 

 

연구회소개 | 회원 가입  |  분과 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운영위  |  안과밖편집위  |  자료실편집위 |  영미문학연구 편집위 |  출판기획위번역평가위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SES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