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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모리스 9월 발표문: Poetry of Despair

작성자

이순구

작성일자

2007-12-25

이메일

leesoonkoo@yahoo.co.kr

조회

3242


The Poetry of Despair
영미문학연구회
근대분과 세미나
2007년 10월 20일
발표자: 이순구.

I. 『트로이의 몰락』(Scenes from the Fall of Troy)

1867년 The Life and Death of Jason, 1868-70년 The Earthly Paradise의 출판과 더불어 모리스는 당대의 주요 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Earthly Paradise를 다 읽어본 독자는 없을 것이다. 모리스의 걸작이었던 이 작품만큼 오늘날 천대받는 빅토리아조 작품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주의 깊게 읽다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William Morris, Designer"와는 다른 초상, 즉 목적 없는 갈망,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과도하게 넘쳐 절망에 빠진 후기 낭만주의 시인의 초상을 보게 된다.

Defence of Guenevere 와 Jason 사이에 9년의 침묵이 있었다. 그러나 모리스는 글은 계속 쓰고 있었다. 신혼여행에서 다녀와 Red House에 입주한 뒤 극시 Scenes from the Fall of Troy를 썼다. 이 시는 미완이었고,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다. 여기서 초기 시에 나타난 실패감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이 시를 이후의 Earthly Paradise와 비교하면 변화가 주목할 만하다. 전자의 시에서는 실패감이 나타나고 있지만 영웅적 가치들이 evoked 되었다. 용기, 아름다움, 인내심, 지혜 등의 가치가 전복 당하지만 그 가치는 결코 거부되지 않았다. 모든 시적 장치들은 진정한 갈등과 삶에 대한 느낌들을 evoked 했다. 그러나 Paradise를 쓰면서 완전히 다른 글쓰기 방식을 도입했다. 그럼으로써 초기시의 강함과 감동을 저버리고, 약함과 미성숙을 견지했다. 이러한 이해는 그의 중기 시의 핵심이 된다. 이는 그의 개인적인 전망에 있어 반란에서 환멸로의 태도의 변화를 드러내는 것이자, 영국 낭만주의 운동의 degeneration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II. 『지상의 천국』(The Earthly Paradise)

24개의 poetic narratives로 구성. 서곡 “방랑자들”에서 중세의 북부 병사들이 영원한 생명과 청춘을 찾아 항해를 시작하며, 늙어서 그리스 전통이 남아있는 친절하고도 비옥한 땅에 도착하여 방랑자들과 그들을 환영하는 그곳의 hosts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얘기들로 구성된다. 초서의 캔터베리 테일즈 연상. 물론 질은 더 열등함. 인물들 간의 구분도 없고, 이야기들은 천편일률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야기를 읽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된다. 그것도 먼 옛날 먼 곳에서 벌어진 얘기들에 대한 것이다. 내레이션 방식도 느슨하고, 고어로 가득 차 있다.

고어는 정적이고 장식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다시 들려주는 옛날 얘기. 왜 그는 여기서 로맨스 형식을 택했을까. 마술과 용의 얘기들인 이 시가 당대 사람들 사이에서 왜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이들 얘기들과 그 자신의 경험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III. "A sense of something ill..."

로맨스는 생산 노동과 분리된 계급 사이에서 유행했던 문학 양식이다. 그러나 19세기에 그것은 압제자들과 피압제자들 사이에서 폭넓게 인기를 누렸다. 독자들은 거기서 그들 자신의 삶의 황폐함으로부터 피했고, 그들 삶에서의 영웅적이고 미적인 것의 사라짐에 대한 보상을 발견했다. 앞부분 “Apology"를 보면 왜 로맨스 형식을 취했는지, 그것이 의도적인 선택인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의 풍요로운 illusion과 삶의 적대적인 현실 사이의 대조를 통해 독자의 관심을 얻고, 시대의 "improvement"를 거부하는 반란의 정신도 감지되지만, 이 시는 요악하면 패배의 고백이다. 낭만주의 운동의 전통에서 보면 시인에 대한 셸리의 옹호를 거부하는 것이며, 시적 의식과 책임을 위한 키츠의 투쟁을 거절하는 것이다. 키츠의 시와 모리스의 초기시에 자리잡고 있는 이상과 현실, 삶과 예술의 풍요로운 갈망과 천박한 사실 사이의 긴장이 이제 이 시에 오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Apology"에서 언급되고는 있으나, 실제 주요시 부분에 들어가면 갈등은 포기되고 만다.

『지상의 천국』을 낭만주의 쇠락기의 문맥에서 살피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르주와 세계와 속물주의에 짓눌린 모리스에게 현실세계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우리는 굳이 그의 정신세계를 여러 암시들로부터 재구성할 필요가 없다. 말년에 쓴 그의 글 "How I became a Socialist"(1894)에서 그 자신이 그것을 놀랍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욕망을 젖혀두면, 내 인생의 주요한 열정은 근대문명에 대한 혐오였고 지금도 그렇다.... 이 모든 것을 지금처럼 그때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왜 그랬는지 그때는 몰랐다. 과거에 대한 희망은 사라졌다. 오랜 세월의 인간의 투쟁은 이러한 조야하고 목표 없고 추한 혼란만을 만들어냈다. 내게 가까운 미래는 더러운 문명이 이 세상에 자리 잡기 전에 존재했던 최후의 survivals를 다 쓸어버림으로써 현재의 모든 악을 더욱 심화시킬 것만 같은 것이었다." (125).

이 시에서 희망을 잃은 낭만주의 운동은 이제 더 이상 반란의 운동이 아니라 보상이자 도피다. 충만함의 희망을 거부당한 갈망은 이제 고독한 개인의 마음속에 생각으로만 남게 된다. 시는 이제 mood만 있게 된다. 방랑자들에게는 mortality에 대한 인식만이 남는다. 그것은 인간의 경험의 다른 측면들에 대한 태도마저도 바꾼다. 새로운 요소란 바로 희망의 부재다. 미래의 삶에 대한 인간의 충만함에 대한 희망의 부재다. 게다가 이러한 희망의 부재는 기본윤리가 철저한 개인주의인 사회의 문맥 내에서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모든 압박은 인간을 이웃으로부터 소외시키며, 함께 행동하는 인간들의 객관적 가치들을 거부하고, 개인의 만족 외에는 다른 더 영원하고 더 광범위한 선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제 호머의 자리를 헉슬리가 차지했다. 모리스는 헉슬리를 미와 예술과 중요한 인간적 덕목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사회의 예언자로 간주했다. 그는 과학자 다윈을 적으로 삼은 게 아니라 진화론의 언론인(publicist)인 그를 적으로 삼았다. 이제 모든 곳에서 모리스는 "sordid, ugly, aimless confusion"을 본다.

그러나 이게 이 시의 다가 아님은 다행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리스의 생애에 나타난 분명한 변화와 희망의 재탄생을 위한 능력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의 또 다른 지속적인 흐름은 물론 달(months)을 설명하는 시들을 제외하고는 지배적이지 않고, 또한 우울함의 색조 없이는 자주 나타나지 않지만, "지상에 대한 깊은 사랑과 거기서의 삶에 대한 애정"이 암시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미와 계절에 대한 예민한 evocation에서 자주 발견된다. 때로는 촌스럽지만 절망의 범주를 벗어나는 일상적인 삶에 대한 묘사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 비록 의식적인 목적은 없을지 몰라도 삶에 대한 신앙과 확신이 있게 된다.

IV. "The time lacks strength"

이 지상의 천국이 맨 처음 발표되었을 당시의 영국을 후에 모리는 "this sordid, aimless, ugly confusion", "a counting house on the top of a cinderheap, with Podsnap"s drawing room in the offing"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이 시의 기조가 되는 현대문명에 대한 증오감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중산층 독자들 가운데서 광범위하게 즉각적으로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세인트 제임스 매거진 평자는 모리스가 "이 시대가 특별히 원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선언했다. "세상은" "기계의 소음과 부의 소란스러움뿐으로" "우리가 견디기에는 참을 수 없다." (134) 폴몰 거제트 평자도 "추한 영국의 노동의 세계가 주는 압박과 염려로부터 벗어나 먼 낭만주의의 세계의 우아한 그림들에 빠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니 기쁘다"고 했다. 브라우닝을 공격했던 새터데이 리뷰도 "초서 타입의 현대시"를 만나 기분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환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모리스의 독자는 모리스 자신이 태어났고, 산업혁명에 의해 부유해지고, 1851년 대영박람회 후 20년간 모리스의 청장년기에 권력과 부의 최고의 정점에 섰던 중산층이었다. 1851년 인구조사에서 전문직 종사자가 272000명이었던 게 1871년 가면 684000명이 되었고, 같은 기간 동안 ... 이처럼 상업과 기업에, rentier에, 전문직에 종사했던 거대한 중산층은 자신들을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실제적인 통치자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토양 위에서 빅토리아니즘의 특징적인 태도들이 flourished.

이러한 중산계급의 특징적인 삶을 잘 묘사하는 것으로는 모리스가 보기에 디킨즈의 『우리 서로의 친구』에 나오는 "Podsnappery"였다(137).

영국만이 최고, 다른 나라의 풍습과 관습은 경멸, 이들에게 런던의 거리에서 굶어죽는 거지들을 말함은 예의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을 위선자라고 보는 것도 쉽지 않다. 이들은 아무도 스스로 위선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포스냅 사람들도 스스로를 계몽되고, 인간적이며 진보의 선두에 서있다고 생각했다. 매슈 아놀드는 이들을 위선자가 아니라 속물로 보았다. 빅토리아조의 특징적인 중산층 감수성은 감상성과 위선으로 가득 찬 천박한 문화로 구성된 총체적인 것이었다. 이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한 것은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착취의 사실이었다. 이들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 "신의 법칙"을 거룩한 것으로 삼았다. 자신의 소득의 근원을 따지지 않았던 금융소득업자들, 최고의 값비싼 교육을 아버지를 아주 잘 두었다는 이유로 받았던 자수성가한 mill-owners의 아들들 ... 인간의 모든 가치를 재산의 가치로 환원시키고, "점잖음"과 orthodox의 압박감은 자수성가(selp-help) 외의 모든 삶의 활력에 찬 것들을 부끄러워 하도록 만들었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의 가난을 그들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에 대한 죄의식을 벗어던졌다.

물론 이런 지성과 감수성의 한계는 갑자기 전체 계급에 스며든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의 혈관을 서서히 스며드는 독약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의 힘에 의해 지속적으로 좌절되었다. 이 기간은 과학적 이론에 있어 거대한 진보의 세월이었다. 다윈주의와 반계몽주의의 대결, 중산층 여성의 교육과 법적 직업적 권리를 위한 운동 등이 있었던 용감한 세월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빅토리안 주의에 대항했던 용감한 반대조차도 전망에 있어 똑같이 빈약한 감수성을 드러냈다. 가장 고상하고, 가장 감수성이 강한 정신의 소유자들도 이러한 해독의 결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 했다. (이는 디킨즈, 조지 엘리옷, 매슈 아놀드 등도 마찬가지다)

잠시 결코 "전형적인 빅토리아인" 이 아니었던 비평가로부터의 어떤 그림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자. (141) 여기서 존 러스킨은 그 자신이 "빅토리아조의" 감수성의 깊이로 빠져든다. 러스킨이 보기에 Murillo의 그림의 죄는 거렁뱅이 아동의 버려짐과 슬픔을 묘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활력을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비를 구하지도 않고, 중산층 관객이 그들에 대해 생각할 바에 대해 걱정하지 않기 때문에 악하다. 그들은 공공연히 감각적 탐닉의 죄를 저지르고, 목사님의 과수원에서 죄의식 없이 사과를 훔치며, 무엇보다도 더러운 발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결국 그들은 박애주의자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도 행복해 보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 것이다. 이것이 그림에 대한 존 러스킨의 시각이었다.

러스킨처럼 훌륭한 자가 이런 실수를 범한다는 것은 아놀드 표현에 따르면 "절단된 인간"을 강조한다. 인간의 양심과 감수성은 제대로 취급되지 않으면 결국 인간에게 해를 끼치고 만다. 공적 직업과 경험의 사실들이 서로 다르고, 과거의 문화가 현재의 진부한 감상성을 비난하게 되면 인간의 마음에 갈등과 긴장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진보"의 공적인 찬미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의 전문 노동자들의 일상적 경험은 아주 달랐다. Mark Rutherford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삶의 사실들은 어두운 길이요, 군중이요, 서두름이요, 진부함이요, 고독이요, 무엇보다도 가장 나쁜 것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지독한 의심이다."(142) 시대의 천박함으로부터 달아난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인 Hopkins는 1881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리버풀과 글래스고에서의 나의 경험은 내 머릿속에 확신을, 진정 분명한 확신을 넣어주었다. 그것은 가난한 자에 대한 도시적 삶의 misery와 모든 가난한 자의 misery와 인류의 타락과 이 나라의 문명의 공허함에 대한 확신이었다. 바라보는 것들을 매일 소화시키는 것만으로도 내게 인생은 짐이었다."(143) 러더포드나 합킨스나 예외적인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당대의 속물들 사이에서도 말로 전달할 수 없는 불만으로 존재했다. 개인의 경험과 공적인 발언은 서로 다르다. 위대한 빅토리아조 사람들의 삶이 더 많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그들 내면의 예리한 갈등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사상과 예술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만 존재했던 게 아니었다.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빅토리아조의 중산층의 삶에 나타났다. 반쯤 의식할 수 있는 근심들과 죄의식으로 구성된 거대한 accumulation을 드러냈다.

"진보"와 "self-help"를 지지했던 이 기간에 아주 영원한 가치를 지닌 문학이 배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왜냐, 정반대로, 러더포드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 말해지고 글로 표현되어지는 많은 것의 특징은 우울함이다. 그것은 과거의 선조들이 지녔던 것보다 더 심오한 인간의 비밀에 대한 인식 때문이 아니라, 우울해지는 게 쉽고 시대가 힘을 결여하기 때문이다." (143) "시대가 힘을 결여하다니" 이것은 영국의 산업 최고주의의 시대에 대한 기이한 촌평이다. 그러나 이제 이것은 모리스의 『지상의 천국』이 맨처음 등장했을 때 왜 전반적으로 환영을 받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이러한 열렬한 환영은 두 개의 상반되는 사상의 학파들로부터 나왔다. 하나는 공리주의자들이었다. 프레데릭 해리슨은 이미 예술과 공적 삶의 분리 이론을 들고 나옴으로써 매슈 아놀드의 분노를 일으켰다. "교양인은 정치에서 가장 형편없다. 그에게는 그 어떤 가설도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지 않고, 어떤 목적도 지나치게 비실제적이지 않다." 다른 하나는 계몽주의자들의 적극적인 격려였다. 이들 비평가 학파의 견해에서 보면 지상의 천국에서 이 고유의 영역을 발견함은 모리스의 탁월함이었다.

해리슨의 동료 John Morley는 종교도 무시하고, 정치도, 박애주의도 무시하는 모리스의 문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예술과 도덕의 분리론. (144) 시를 사적인 만족의 영역으로 몰고 갔다. 미를 향한 인간의 갈망은 활기찬 사회적 행위를 행하지 않고도 만족되어질 수 있다. 시를 사적인 만족과 도피의 세계로 몰아넣고도 사회적 열매를 가져오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고 믿었다. Walter Pater의 art for art's sake에 대한 비판: 공리주의에 의한 예술의 더럽혀짐을 방지하기 위해, 더러운 현실로부터 그것을 옹호하기 위해, 페이터는 키츠에서 암시되던 예술을 위한 예술을 더욱 완전한 형태로 밀고 나갔다. (147) 인간의 갈망은 삶에서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예술에서 미를 창조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 따라서 형식의 예술적 미가 그 자체가 되었다. 뒤에 이 이론을 오스카 와일드가 옹호: (148)

이러한 시대의 분위기에서 모리스의 지상의 천국은 널리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환영(reception)은 모리스를 빅토리아조 중산층 독자의 머리에 영원히 '자리매김' 시켰다. 그는 이들에게 달콤한 비현실적인 시인이었고, 도피와 아름다움과 복고풍의 시인이었다. 모리스가 아주 다른 능력과 태도를 보여주기 시작했을 때, 대중은 실망하든가 혹은 그 변화를 바라보려들지 않았다. 모리스가 법정에 경찰관을 공격한 죄로 등장했을 때 새터디 리뷰지의 H.D. Trail은 그에게 "지상의 천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충고했다.

비평가들이 도피의 시에 대해 찬반 토론을 벌이는 것은 충분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에게 그가 느낀 절망은 가식이 아니었고, 현실이었고, compulsive한 것이었다. 말년에 그의 절망이 인간에 대한 새로운 희망에 의해 극복되었을 때, 그는 지상의 천국을 비웃었고, News from Nowhere에 더욱 현실적인 이상이 있다고 말했다. 지상의 천국에 대해 그는 "이 시의 가장 좋은 점은" "그 이름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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