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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효녕 선생님 글 - 니체 관련 내용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6-06-20

이메일

easung@dankook.ac.kr

조회

4007


* 윤효녕 선생님께서 어찌된 것인지 게시판 회원 로그인이 안 된다고 하셔서, 윤효녕 선생님께서 메일로 제게 보내신 글을 대신 올립니다. 지난 토요일 세미나에서 논란이 되었던 부분입니다. 그날 시간이 부족하고 니체의 원문 전체를 볼 수 없어서 토론이 미진했는데, 아래 토론 내용을 참조하시고 후속 토론도 부탁드립니다. 니체의 해당 부분은 분과 자료실에 올려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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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토)의 근대분과 세미나에서 “니체의 공리주의 비판”(발제문 5-6쪽)을 소개하는 자료로 인용된 니체의 글 부분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가 해결되지 않은 채 미루어졌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발제문 6쪽의 인용문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그 미진했던 해결을 위한 판단의 근거로는 역시 context가 중요할 것이므로, 그 인근 부분의 본문을 스캔하여 파일로 첨부하였습니다. 파일 이름은 원래 영어 번역서(Will to Power)의 쪽수와 일치합니다.

세미나에서 확인된 해석상의 차이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발제자를 포함한 좌중의 해석: 니체는 노동자들이 군인처럼 느끼도록 학습해야 하며,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예를 위해서, 그리고 급료를 받지 않고서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노동의 결과를 성취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니체의 태도는 금전 관계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적(공리주의적) 노동-인간의 관계를 비판하는 의미를 지닌다. “soldiers”는 나쁜 추억을 떠올리는 그러한 군인의 뜻이 아니라 시민군 정도의 긍정적 군인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2. 나의 해석: 노동자가 군인처럼 느끼도록 학습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돈 받고서가 아니라 명예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것 등의 주장은 니체의 주장이 아니라 이미 세상에 있는 주장이고, 니체는 그러한 기존의 주장을 비판하는 입장이다. 노동이 수입을 낳아도 노동자에게 명예 훈장은 줄지언정 임금도 주지 말고 노동자를 부려먹어야 한다는 식의 발상을 니체가 할 리 없다. 느낌표는 문장에 담긴 내용에 대해 글쓴이가 거리를 유지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일종의 반어적 기호이다. 우리말로 그 뜻을 파내어 표현하자면 “---하단다, 나원 참” 정도에 해당한다. 또, “should”라는 조동사는 글쓴이(니체)가 주어에게 부과하는 의무나 당연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 쪽에서 느끼는 의무나 당연의 뜻을 나타낸다. 그리고 니체는 주어가 이미 그러한 의무나 당연을 느끼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 어조로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1. 기본적으로 세미나 때 내가 제시한 해석이 옳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 뒤에 본문에 의해 확인된 바로, 문제가 된 인용문(Section 763)을 포함하여 스캔 첨부된 부분(Section 753-764)에서 니체는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세미나에서 해석된) 당시의 사회주의와 그로부터 예상되는 미래 사회주의하의 노동자의 조건을 비판하고 있다. 세미나에서 나는 763의 “an honorarium”이 725의 “the blessing of work”와 상통하는 의미를 지니며, 노동 신성화 내지 이상화라는 자본주의 노동 윤리의 근원은 신교 기독교에 있다는 생각을 제시했었다. 앞부분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뒷부분의 생각은 수정한다. 니체의 글 이 부분에서는 사회주의 노동관에도 마찬가지의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2. 세미나에서 크게 논의된 것은 아니지만, 발제문 5쪽에서 인용한 니체의 글 Section 725의 부분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예전에는 국가를 타산적 효용성의 수단으로 보는 국가론이 있었다”는 말은 17-8세기의 사회계약론적 국가론(구성원들의 이익 욕심을 최대 공약수로 하는 계약체)을 염두에 둔 것이고, “그런데 오늘날에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은 19세기의 의회민주국가를 염두에 둔 것으로 추론된다. 즉 이 부분에서 니체는 19세기 의회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판의 대상은 의회민주주의의 정부, 관청, 또는 정책 수행자 몇몇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peoples”)가 되고 있다.
물론 Section 725는 바로 앞의 Section 724와 더불어 19세기 민주주의 국가에 만연해 있는 이른바 공리주의적 발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725에 나타난 니체의 태도는 “유용성”이란 명제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는 아니고, 사람들이 “유용성”의 의미를 잘못 알고서 떠들고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바로잡아주고자 하는 태도이다. 그러기 위하여 니체는 “유용성(useful)”과 “효용성(utility)”을 그런 식으로 따로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the theory the state as a calculating utility”는 사회계약론에서 출발하여 결국 19세기에 실천된 공리주의적 국가론을 의미하는 것으로 연장하여 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효용성을 계산하여 고식적 정책을 시행하는 관료적 국가나 국가기관(각종 관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군주제를 싫어하는 민주주의하의 국민 대중이 너나 할 것 없이 갖고 있는 물질적 이익 욕심을 힐난하는 니체의 입장을 보여준다.(인용에서는 배제되었지만 첨부된 본문에는 있는 줄표 이하의 부분을 보면 그런 뜻임) 따라서, 이 구절이 ꡔ어려운 시절ꡕ에 나오는 Public-office Millenium이나 Circumlocution Office에 대한 디킨즈의 풍자를 보충 설명하는 준거로 인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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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녕 선생님 글 - 니체 관련 내용 <- 현재글

성은애
2006-06-20
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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